최근 이탈리아영화가 자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35mm> <치네마토그라포>(Cinematografo) <시악>(Ciak) 등 영화 전문 매체가 낸 통계에서, 로베르트 베니니의 <호랑이와 눈>이 할리우드영화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봉 2주 만에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2위와 3위를 차지한 영화들은 로만 폴란스키의 <올리버 트위스트>와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최근 이탈리아영화들이 자국 내에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호랑이와 눈>의 흥행은 반가운 소식이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성공은 800관에 이르는 거대한 배급 규모와 로베르토 베니니에 대한 자국민의 유난한 관심과 애정 때문으로 보인다.
1998년 <아름다운 인생>으로 오스카를 수상하며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로베르토 베니니는 2002년 <피노키오>를 내놓았지만 실망스런 성적에 그쳤고, 다시 3년 만에 <호랑이와 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베니니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여주인공으로는 그의 예술과 인생의 반려자인 니콜레타 브란스키가 맡았다. 음악은 니콜라 피오바니가 담당했다.
베니니는 작품 속에서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대학 교수이자 시인으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논문 취재차 이라크에 갔다가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지자, 그는 치료할 약을 들고 그녀를 찾아나선다. <호랑이와 눈>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지만, 이라크를 무대로 하는 이 영화에는 전쟁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한 시인이 사랑하는 이를 찾아 이라크를 전전하는 이 영화는 ‘사랑이 전쟁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베니니는 한 인터뷰에서 “유쾌한 남자가 타인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감성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국영TV인 <라이>는 베니니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항상 똑같은 배우를 쓰고, 사랑이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주제를 고수하는데다, <아름다운 인생>과 비슷한 영화라는 평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 이에 베니니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 현 총리와 의형제를 맺겠다”(그는 최근 총리의 문화 예산 삭감 결정에 반발하며 그의 사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는 농담으로 운을 뗀 뒤, “시인의 시각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며, 전쟁을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