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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3] - 박흥식 인터뷰

폭압적 시대의 성장기를 그린 박흥식 감독 인터뷰

“이 영화는 미안하다는 나의 고백이다”

<사랑해, 말순씨>는 박흥식 감독이 데뷔작으로 준비했던 시나리오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많이 의존한 이 시나리오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인어공주>를 먼저 내놓은 뒤에 만들어지게 됐다. 박흥식 감독은 <사랑해, 말순씨>를 “성장기의 상실에 관한 영화이면서 불행한 공기에 대한, 불행이 시작되는 공기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과연 그는 지금 관객들과 자신의 소년기가 어떤 교감을 나누길 바랐던 것일까? 기자시사회가 있던 10월24일 저녁 박흥식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본 30대 후반들은 공통적으로 <사랑해, 말순씨>의 시대 고증이 좋다고 한다.

=예산문제 때문에 정확히 하진 못했다. 촬영지인 전주의 느낌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더 가깝다. 슬레이트 지붕, 시멘트 골목, 마루와 장독대가 있는 가옥구조, 창호지 문 등에서 옛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는데, 영화의 배경인 1979∼80년의 서울은 더 남루하고 누추했다.

-물리적 공간의 재현보다 시대의 정서와 분위기의 재현이 정확했다는 뜻인 것 같다. 캐릭터와 디테일이 그렇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태호, 은숙, 재명 등이 시대에 대한 은유로 기능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 느닷없이 퇴장해버린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광호의 시간에 봉인된 느낌이랄까.

=적확한 표현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재명이가 만날 부르던 노래를 여동생 혜숙이가 부르고, 태호는 환상신에서 한번 더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후반부가 힘을 가지려면 파편적이기보다 광호쪽으로 상황을 몰아가서 매듭짓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밥먹다 뛰쳐나가 사라진 은숙이 정도만 나중에 간호학원 선전 포스터에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캐릭터들이 그렇게 사라지면서 이야기의 초점도 함께 사라진 느낌이다. 철호의 디테일, 은숙의 디테일, 재명의 디테일들이 각각 그 시대에 대한 은유로서 명확한데, 그 시대가 그래서 바꾸어놓은 것이 무엇인가, 그 이후의 시간과 어떻게 닿는가를 말하지 않고 엄마의 죽음으로 매듭짓는다. 이 영화가 단지 소년과 엄마의 이야기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1979년이고 1980년이기 때문이다. 왜 그때인가. 그 시대의 공기는 굉장히 폭압적이고 무서웠다. 1년 새 대통령이 세번 바뀌는 격변기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도 거칠었다. <살인의 추억>이 연쇄살인을 소재로 시대 공기를 묘사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12·12라는 해프닝을 비꼬아서 시대 분위기를 묘사했다면, 나는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격변기의 느낌을 묘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물이 너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저마다 대표하는 의미들이 있었고, 그래서 다 필요했다. 은숙이는 간호보조사다. 내가 살던 그 시대에는 흔히들 공순이라고 불렀다. 노동자. 절대로 계급 상승을 할 수 없는 사람. 간호학원을 나와서는 절대로 간호사가 될 수 없고, 은숙이도 결코 간호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철호는 학교에서, 깡패가 아니었음에도, 깡패라는 명목으로 제명당하고 퇴학당한 아이들에 속한다. 태호의 모델이 된 실제 내 친구는 1년 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갔다왔는데 눈 하나가 없어졌더라. 그때 교육제도라는 건 그만큼 폭압적이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그대로 이행했다. 다운증후군 환자 재명이 같은 아이는 같이 살아서도 안 되고, 세상에 존재해도 안 되는 아이였다. 이 영화에서 재명이를 밀어낸 것도 동네 사람들이다. <사랑해, 말순씨>가 소년의 영화이긴 하지만 사회 전반의 공기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인물들이었다. 철호와 은숙이, 재명이가 사라지고나서 엄마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귀결시킨 까닭은 가장 곁에 있었던, 항상 옆에 있어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을 잃음으로써 나머지 세 사람의 상실까지도 대변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른 영화들을 의식했는지 궁금하다. <말죽거리 잔혹사>만 해도 이 영화와 유사하게 그 시간을 돌아보는 태도가 있다.

=이 영화의 서술방식은 일종의 고백이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의 고백. 재명이 같은 친구가 실제로 우리 동네에 살았는데, 나는 그 친구가 무서웠다.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싫어했다. 멸시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가 내 모자를 뺏어갔다가 집 앞에 와서 돌려주면 막 털어냈으니까. 뭐가 이상한 게 묻었을까봐. 그런데 그 친구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미안했다. 광호가 “재명이 형한테는 편지를 보내지 말 걸 그랬다”는 말이 내 고백이다. 은숙이도 마찬가진데, 그런 누나들을 보며 나는 성적인 판타지만 채우고 공순이라는 점 때문에 천대시했다. 깡패 친구 철호는, 쟤는 깡패니까, 싸움이나 하고 다니고 손가락도 없으니까, 만나기 싫었다. 절친한 친구였는데도. 시간이 많이 흘러도 죄책감처럼 남아 있는, 멸시하고 싫어했던 사람들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화장을 하고, 억척스럽고 예쁘지도 않고 한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싫어했다.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땐 생각했다. 철들고 나서는 내가 우리 어머니 때문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머니가 실제로 화장품 판매원이셨나.

=아모레에서 일하셨다.

-그래서 말순씨가 아모레 마크 달린 유니폼을….

=20년 하셨다.

-재명이는 실제 다운증후군 환자를 캐스팅했다.

=재명이 캐릭터는 실제 환자를 써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영화는 현실감을 잊어버리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연기력으로 치면 연기 잘하는 배우의 장애우 연기가 더 매끄럽겠지만 사람들이 볼 때 가짜라는 생각이 들면 절대로 안 될 것 같더라. 캐스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부의 반대도 심했고, 실제 환자를 디렉션하기는 힘들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믿었고,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려면 조금 거칠더라도 이 친구를 써야 한다고 확신했다.

-광호 아버지는 왜 사우디로 가 있는 건가.

=<인어공주>의 연장선인데, 나한테 아버지에 대한 벽이 있다. 살면서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무기력하다라는 그런 느낌을 받아와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표현이 안 된다. 표현하고 싶지가 않다. 아버지와 어떤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게 있다. <인어공주> 때도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당신이 그리는 여자들은 다른 남자감독들이 그리는 여자들과 좀 다른 지점에 있다. 현실과 일상에 밀착된 여성을 그려낸다.

=내가 바라보는 여자, 어머니의 모습은 말한 대로 현실과 굉장히 밀착돼 있다. 어머니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분이다. 당신은 여자로 태어나 많은 걸 잃고 희생하더라도,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전투적인 모습 말이다. 내가 영화 속에 자꾸 엄마 모습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그 전투적인 삶의 모습이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서다. 그 삶의 대가라는 건 굉장히 컸다. 아름답고 섬세한 모습은 다 빠져나가고 여성성을 잃는다. 이 영화가 배경인 시기는 더더욱 여자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힘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영화를 자꾸 만든다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엄마 얼굴 예쁘네요>라는 처음 제목도 버린 거지만, 내가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준 그분에 대한 느낌은 영화 속에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절대로 간호사가 될 수 없는 은숙이도, 안타깝지만 언젠가 광호 엄마처럼 될 거다. 광호가 좋아했던 여성성은 희생당하고. 그렇게 되기 전의 모습, 아름다움과 꿈을 잃어버리기 전의 여성을 표현한 것이 은숙이다.

-엄마를 묘사한 디테일 중에, 광호가 더럽다고 뱉은 밥을 도로 주워먹거나, 광호가 부적 붙이러 지붕에 올라갔을 때 밑에서 아들 파이팅, 하며 밥 집어먹고 있는 모습들은 유독 인상적이다.

=감독이 잡아내는 디테일이라는 것은 동기부여된 배우들이 만들어낸 것을 잡아낸 모습이다. 문소리씨 같은 경우는 정말로 특별한 배우다. 내가 정말로 생각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많이 잡아낸다. 밥풀 집어먹는 모습이나 광호가 뱉은 밥 주워먹는 거 모두 문소리씨가 만든 디테일이다. 밥먹는 장면 찍을 때, 광호가 먹다 뱉은 걸 진짜로 집어먹더니 계속 씹고 있다가 내가 컷, 하니까 그제야 뱉더라. 왜 이렇게 컷을 늦게 하세요. (웃음) 감독이 아주 디테일하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배우의 상상력을 더 가두는 것 같고, 그냥 놔두면 잡아낼 것들이 더 많다. 눈썹도 본인이 밀었다. 첫날 촬영 끝나고 전주 내려오면서 싹. 나는 눈썹 밀라는 얘긴 안 했다. 필요하긴 한데, 다시 자라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러고 두달 뒤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촬영도 있어서 말을 못하고 있었다. 놀라기도 하고 감동도 받고, 이거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웃음) 그리고 엄마 분량은 전체 120신 중에 35신밖에 안 되는데 촬영 한달 반 동안 자기 촬영 없어도 항상 현장에 있었다. 오락가락이 번거롭기도 했겠지만, 문소리씨는 현장에 머물러 있는 스타일이다. 모니터도 해주고, 광호랑 혜숙이 연기 조언도 많이 해줬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혜숙이가 엄마 옷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문소리씨가 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카메라워킹과 동선만 설정했다. 아이가 가짜로 울 것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해볼게요, 하더라.

-어떻게 했다는 건지.

=나도 듣기만 했다. 아이가 물어봤다더라. 왜 여기서 울어야 하냐고, 왜 광호 오빠가 옷을 뺏으려는 거냐고, 나는 왜 안 놓으려고 하느냐고. 그래서 문소리씨가, ‘네가 지금 이걸 놓으면 엄마가 영원히 네 곁을 떠나는 건데 엄마가 떠나면 네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이걸 놓지 않으면 엄마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데’, 이런 동기부여를 했더니 아이가 막 울더란다. 그때부터 옆에서 대자를 들고, ‘너 이렇게 울면 안 돼, 이렇게 가짜로 울 거면 서울 올라가!’ 하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걱정을 많이 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애가 뭘 저렇게 우냐,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 찍으나마나한 장면이 되니까. 감사하다, 문소리씨한테.

-일상의 디테일을 중시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일상이라는 것을 사실은 감독들이 통제한다. 대표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렇고, 허진호 감독도, 좀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자기 고집으로 통제한다. 본인이 만드는 일상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내 일상성을 그런 감독들의 일상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 홍상수 감독이나 허진호 감독이 묘사하는, 일상을 아주 탁 잘라놓은 것 같은 날카로움을 난 발끝만큼도 못 쫓아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정쩡하긴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느낌들은 그보다 극화돼 있고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그 상태에서 공감을 형성하고 싶은 게 나는 더 강한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 해본 행위들에서 재미있는 느낌들을 찾아보려는 거다. 맞아, 나도 저랬어, 그런 공감. 그래서 내가 표현하는 일상에는, 확 잘라내서 섬뜩하게 다가오는 모습은 없는 것 같다. 날카로워야지. 일상을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하면 거기에는 날카로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좀더 영화를 잘 만드는 수준에 올라가게 되면 거기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을 받아서, <사랑해, 말순씨>의 아쉬움이라는 것도 그 많은 디테일들이 소년의 성장기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하나로 의미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미화를 바라지 않는 감독이 어딨겠는가. 나는 아직 내 영화의 재미있는, 대중적인 방향을 원하는 것 같고, 한편으로 의미화에 이르기에 내가 가진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심도가 덜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영화가 훨씬 더 아프고, 날카롭고, 건조하고, 지독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좀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연출의 방향을 정리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자리매김을 좀더 단단히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진데, 데뷔작으로 하려고 했을 당시에는 이 영화가 관습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 <인어공주> 끝내고 시나리오 다시 쓰면서 관습적인 재미를 많이 끌어들였다.

-<인어공주>나 <사랑해, 말순씨>는 징그럽고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주면서 어떻게든 잘되지 않겠냐는 희망도 제시한다.

=내 영화 세편을 다 본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세계관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다만 세상은 힘들고 잔인하고 차갑고 부대끼는데, 그 싫은 모습을 내 영화에서 또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실만큼 잔인하게 묘사하면 내가 보기 싫고 보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현실에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나한테는 있는 것 같다. 여과시키는 것과는 다른 문제로. 그건 내가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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