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번진 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빅터(제비어 알바라)는 이상한 결심을 한다. 자기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기보다 폐허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자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여자 애나(아드리아나 다비도바)는 미용사지만 지독한 마약 중독자. 빅터는 언제나 몰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본다. 그러고는 마침내 구원의 손길을 뻗기라도 하듯 그녀를 납치하여 말 그대로 개목걸이를 채운 뒤 감금시킨다. 그러면서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튄다. 애나는 금단현상으로 점점 힘들어하고, 빅터는 그녀의 정신을 구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를 혹사시킨다. 불행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애나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빅터가 죽기 전에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빅터와 애나는 서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스페인영화 <감각의 신드롬>은 숭고하지만 흔해빠진 말, 구원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지독한 방식으로 소통에 이르는 이상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죽음에 이른 남자가 마약에 취한 여자를 가두어 그녀의 삶을 재생시키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내용 전부다. 그 단순한 내용을 감싸고 있는 것은 현란한 화면들이다. 디지털 화질이 가져오는 금속성, 거친 감도로 들끓는 불안함,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들, 그리고 절망과 애욕으로 채워진 그들의 가냘픈 몸짓이 가득하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이라면 그것을 충격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화면의 장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감각의 신드롬>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난해한 영화다. 그 화면의 질감들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건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 어려운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말하자면 다 보고도 이 영화는 이해불능이다. 시종일관 불능, 금단 등등의 수많은 정신질환적 낱말들을 자막으로 깔며 그 인물들의 심리적 현상들을 일반화하여 설명하려 하지만 그것의 맥락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조차 없다. 못 만든 건 그렇다치더라도, 비정상적인 소재를 다룬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뜬금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감각의 신드롬>은 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