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기적은 그렇게 온다. “연탄 간다는 핑계로 학교를 땡땡이치는” 품행제로 소년 네모(김관우). 그의 꿈은 미혼모의 남편이 되겠다는 것이다.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하고 돌아온 뒤, 엄마가 정신을 잃고 목숨까지 버리자, 네모의 “골때리는” 꿈은 더욱 굳건해진다. 게다가 상대까지 만났다. 바로, 엄마가 운영하던 시계방 자리에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 부자(염정아). 스무살 많은 여인을 향해 연애편지를 보내는 네모의 엉뚱한 순정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된다. 부자의 어린 아들 기철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 극장으로 뛰어들었던 날 이후, 네모는 보송보송 솜털 대신 까칠한 수염을 단 서른셋의 어른이 되어 있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아이인 네모(박해일)의 소동과 진심을 담으려는 성장영화다. 하루에 1년씩 늙어가는 시한부 삶을 결국 받아들이는 네모의 안간힘은 그저 사춘기 소년의 무모한 애정 때문만은 아니다. 기적 뒤에는 언제나 갈망이 있다. “우째 맨날 늦잠이고. 미혼모 주제에. 미혼모 아들이라서 이름도 웃기는 거 아이가.” 엄마에게 막돼먹은 투정을 하던 네모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평범한 아버지를, 온전한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소년은 뜨듯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기적을 불러낸다.
“결혼 안 하고 아 낳는기 머 부끄러븐 일이라고. 당당하게 키우이소”라고 부자에게 충고하는 13살 소년 네모와 벽에 붙은 <로보트 태권V> 포스터를 보고서 발차기를 흉내내는 33살 네모가 실은 한몸이라는 설정은 <빅>의 개구쟁이 조슈를 보는 것만큼 흥미롭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난 뒤, 영화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네모가 벌이는 소동을 계속해서 카메라가 비추지만, 여기엔 보는 이를 긴장케 할 만한 갈등의 요인들이 없다. 상황은 꼬리를 무는 대신 하늘에서 떨어진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동시에 프로포즈를 받은 부자의 갈등도, 부자를 차지하기 위해 집적대던 경찰서장의 욕심도, 아들의 목숨을 어떻게든 되살리겠다는 네모 아버지의 바람도, 죽음을 눈앞에 둔 네모의 두려움도 희미할 뿐이다.
의문 하나. 감독은 왜 하나같이 선한 인물들을 등장시켰을까. 혹시 뒤돌아보기도 싫은 1980년대를 슬쩍 추궁하고 싶었던 것인가. 영화는 네모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시대 상황에 대한 언급을 내놓긴 하지만, 이마저도 단편적인 설정에 그쳐버린다. 모든 장면을 미숙한 13살 아이의 판타지라고 여길 수도 없는 일. 향수를 자극하는 소품들과 원색 위주의 화면만으로는 기적의 대가를 치르고야 마는 네모의 ‘멋진 인생’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배니싱 트윈>(2000)으로 데뷔한 윤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