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도시의 그늘 여기저기에 새로운 ‘도회형 습지’가 형성되고 있어 별종 생명체들의 터전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곰팡이, 쥐며느리, 돈벌레 등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생명체들이지만, 우리의 보고자는 더욱 주목해야 할 특이종을 가리킨다. 비가 새는 반지하 셋방에서 라면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면서도 방 한구석에 주인처럼 누워 있는 빈대에 수시로 뜯기는, 그러면서도 절대로 펜 마우스를 놓지 않는 지방대학의 그래픽아티스트 지망생들이다. 이들의 궁상맞으면서도 절절한 삶의 장면들이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라는 다소 괴팍한 카메라에 걸려들었다.
최규석은 데뷔 직후부터 문제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만화가가 되어버렸지만, 이로 인해 그를 냉소적이고 암울한 언더 지향 작가의 틀에 가두어버릴 위험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일간신문 연재면은 여러 시각의 기대와 불안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의 나팔을 호쾌하게 불어젖히며 대중 가까이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사회의 살짝 그늘진 쪽에 자리잡은 생명체들에 던지는 그의 훈훈한 시선은 단단한 데생, 독특한 의인화의 상상력,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유머 감각과 적절히 결합했고, 습지의 존재들이 양지의 생명체에 못지않은 밝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독창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만화가일수록 협소한 1인칭의 캐릭터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최규석이 빚어낸 인물들은 웬만한 시트콤 이상으로 풍부한 개성을 보여준다. 쪼잔함의 결정체이면서도 방 친구들의 앞날을 걱정하느라 머리가 아픈 최군, <링>의 사다코처럼 컴퓨터 안에서 살고 있는 듯 작업에만 열심인 몽찬, 넓적한 얼굴만큼이나 푸근한 성격의 정군, 커다란 안경 안의 동그란 눈동자로 ‘나 아무 생각 없어요’를 외치는 재호, 그리고 이들 방에 찾아와 기식하는 사슴 녹용이. 만화 초반의 활력은 길가에 버려진 물건을 주워와 이름을 붙이다 못해 완전한 인격을 부여하며 대화하는 재호의 독창적인 시선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사물의 의인화 경향은 최근 웹툰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패턴이긴 하지만, <마린 블루스> 등의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의인화와는 또 다른 사실적인 형상화가 기막힌 반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어 세속주의의 상징인 녹용이가 내뱉는 치졸하고 비겁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말이 폐부를 찌르고, 왜소하고 주눅든 원래의 최군이 잘생기고 돈 좀 쓰는 또 다른 최군의 연애담을 따라가는 장면이 심장을 파뒤집는다.
다섯명의 주인공 이외에도 넓게 포진된 조연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들은 무궁무진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듯 보이지만, 최규석은 ‘보고서’의 기록을 다소 급하게 마무리한다. 신문 만화를 통해 처음 그를 만난 애독자들의 아쉬움은 적지 않겠지만, 그전부터 그를 지켜보아왔던 사람들은 ‘뭔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려나보다’며 새로운 기대를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