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예쁜 녀석이 군에 갈 때 우리는 꽤 걱정했다. 다행히 험한 꼴 안 보고 높은 분 관사에서 그 집 딸내미를 가르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데 휴가나온 녀석은 “(그 딸내미가) 얼굴도 못생기고 머리도 빈 것이 틈만 나면 나를 하인처럼 부려먹는다”고 울먹였다. 자기보다 더 불쌍한 애는 개밥 주는 공관병인데 그는 결국 군 생활을 다 못 채웠단다. 어느 날 개밥을 비벼서 갖다줬는데 ‘싸모’가 참기름 넣고 제대로 비빈 거 맞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네가 먹어보라고 했단다. 그런 일들이 반복돼 공관병은 정신이 오락가락해졌다고 한다. 차라리 삽질하고 얼차려 받는 게 낫다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간부들 논문을 대신 써주는 논문병, 간부가 치기 편한 곳에 공을 서브하는 테니스병, 목욕탕 관리하며 마사지도 겸하는 때밀이병 등 온갖 기기묘묘한 병들의 세계는 지금도 그대로다.
운전병이나 당번병같이 공식적으로 인가된 병사들 외에 편법으로 병사들을 데려다 몸종처럼 써먹고, 학대까지 하는 짓이야말로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릴 일이다. 여단장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가 인터넷에 이 사실을 알렸던 공관병은 “지시계통에 따라 상담 또는 건의해야 한다”는 군인복무규율을 어겼다고 근신 10일의 징계를 받고, 그의 호소를 듣고 인터넷에 올려도 좋다고 말해준 참모장과 전속부관은 “(공관병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았는데, 정작 문제의 여단장은 서면경고만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관병은 시도 때도 없이 당한 듯했다.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고 따귀를 맞고 상추 기르는 비닐하우스를 3cm 가량 찢었다는 이유로 발길질을 당했다고 한다. 2020년까지 50만명으로 감군한다면서 대단한 국방개혁을 하는 것처럼 생색내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 죽어라 병사들 머릿수 유지하려는 게 간부들 자리 보존 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간부들의 웰빙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인해전술 쓸 게 아니라면 테니스채 들고 때수건 끼고 개밥그릇 챙겨 나설 병사들은 그만 줄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