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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돌비 현상
김소희(시민) 2005-10-28

우유를 전자레인지에서 데운 뒤 꺼냈을 때 겉은 멀쩡해도 실제로는 끓는점이 한참 지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설탕을 넣으면? 순식간에 확 끓어 넘친다. 맹물도 마찬가지다. 전자레이지에서 데운 물에 커피를 타다가 물이 솟구쳐올라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돌비 현상이다. 액체가 끓는점이 돼도 끓지 않고 끓는점 이상으로 과열돼 있다가 이물질이 닿으면 돌발적으로 끓어오르는 현상이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문제가 며칠 사이에 국가정체성 수호를 위한 구국투쟁으로까지 끓는 걸 보니, 비록 말잔치라지만 비약과 속도에 아찔하다. 그러기에 지난해 눈 딱 감고 관 속에 넣어야 했던 것을…. 지가 무슨 전자레인지도 아닌데 겉면에 “이 제품은 평소에는 사문화된 척하고 있다가 틈만나면 이상한 것들을 끓어오르게 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우습게 할 수 있습니다”는 경고문구 하나 없이 철철이 쓰이나. 강 교수의 혐의가 고무·찬양죄인 것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이건 한나라당에서도 없애자고 했던 조항이다.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신문의 사설에까지 사라져야 할 대표적인 조항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 죽은 고무·찬양이 이렇게 뒤늦게 부글부글 대국민 협박을 하는 걸 보니, 국가보안법의 과학적 원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목이 길고 매끄러운 재질의 컵은 특히 돌비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던 국제마이크로파학회의 경고도 새삼스럽다.

돌비 현상을 막으려면 용기 바닥에서 액체를 휘휘 젓거나 모세관으로 공기를 불어넣거나 작은 유리나 사기조각, 모래알을 같이 넣어 거품을 내야 한다. 이 거품들이 미리 기포로 올라와 충격을 완화해주는 원리이다. 그러니까 평소 국가보안법을 꾸준히 어겨 끓어넘침 방지용 기포를 만들어놓는 것도 괜찮겠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앞장서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으로 법을 어겨주셨으니, 나는 계속 불고지죄를 지어야지. 북한의 서커스나 아리랑 공연 화면을 보고 ‘우와, 대단하다’고 한 당신,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한 것으로 갖다붙일 수 있으니까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