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을 도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연탄 수십장을 자전거 뒤에 싣고 가는 연탄가게 아저씨와 엄청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떡집 아줌마가 실은 도를 깨친 사람들이라는 설명은 흐믓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진지하게 힘준 장면이 아니라 웃고 넘어갈 장면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농담이다.
비슷한 감흥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택항에서 수출용 자동차를 주차하는 김현복씨. 그는 컨테이너 안에 자동차를 일렬로 집어넣는 일을 한다. 트레일러로 항구까지 운반된 자동차가 도착하면 그는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타 거대한 컨테이너 안으로 질주한다. 순식간에 옆차 간격 10cm, 앞뒤차 간격 30cm를 유지하며 자동차를 주차시키는 김현복씨. 눈을 감고 주차해도 간격을 유지할 정도니까 도가 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방영된 국수 포장의 달인 최순연씨도 놀라운 솜씨를 보여줬다. 23년간 국수 포장을 한 그녀는 수북이 쌓인 국수더미에 손을 집어넣어 두세번 만지는 동작으로 정확히 국수 1kg을 집어내 포장을 끝낸다. 만약 샤일록이 이런 솜씨를 갖고 있었다면 <베니스의 상인>은 전혀 다른 결말로 맺어졌으리라.
<생활의 달인>에 나온 인물들은 <묘기대행진>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지만 꼭 그래야만 달인은 아닐 것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놀라는 일이지만 포장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짐을 다 싸서 새집에 부려놓는 걸 볼 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일정한 크기로 야채를 썰고 같은 모양의 만두를 뚝딱뚝딱 만드는 어머니의 솜씨는 또 어떤가. 특별한 자격증을 주거나 많은 월급을 주지 않아서 그렇지 유심히 돌아보면 감히 넘볼 수 없는 숙련도를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왜 그처럼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무시당하고 막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회초년생은 우러러 받드는 것일까? 법전을 외우는 것이 빵을 만드는 것보다 유용하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척도는 가끔씩 의심스럽다. 어쩌면 그것은 법과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이데올로기가 아닌지.
아마 지금도 내 자식만은 법관이나 의사를 시켜야겠다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고등학교마다 ‘아무개군 서울대 입학, 사법고시 합격’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걸 보면. 반면 ‘우체부 아무개군 <생활의 달인> 선정’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리는 일은 교장이 미치지 않는 한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문득 한석봉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익히 배운 바로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존경스러운 것은 가난을 무릅쓰고 아들에게 글공부를 계속 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썰기의 달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왜 불을 끈 상태에서도 한치 오차없이 떡을 썬 한석봉 어머니의 장인정신은 기려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한석봉이 어머니 못지않게 떡을 잘 써는 인물이 됐다 해도 훌륭한 삶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석봉 일화의 교훈도 실은 아들에게 글공부를 시킨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처럼 일로매진하는 장인을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쪼록 생활의 달인들이 좀더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