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극장이 없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그 사우디아라비아에 오는 11월부터 극장이 문을 연다고 해서 화제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30년 전만 해도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지난 1980년대 초반에 득세한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이 공공 장소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관람하는 것이 이슬람 규율에 반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영화 상영관을 금지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했는데, 더이상은 영상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모양. 영화관 설립을 허용한 것은 다방면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압둘라 왕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여는 극장은 수도 리야드의 호텔 인터콘티넨털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두 1400개의 좌석을 갖춘 대형 극장이다. 개관 이벤트는 라마단(단식월)의 마지막 3일 동안 벌어지는 축제 이드-알-피트르에 맞추어, 11월3일부터 2주 동안 밤시간대에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영화제다. 제목이 알려지지 않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아랍어로 더빙돼 상영될 예정이라고. 이 소식을 보도한 <아랍뉴스>는 행사가 진행되는 2주 동안 총 5만명의 관객이 다녀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근 들어 카페나 클럽에서 TV로 영화와 스포츠 경기, 비디오 클립 등을 방영하고 있고, TV와 영화제작이 활발해져 VHS와 CD-ROM 제작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과 어린이로 대상을 한정한 개관 이벤트 이후, 극장을 어떻게 운영하게 될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전히 공공장소에서의 남녀 합석을 금지하고 있다고 하니, 사우디아라비아 극장에 ‘연인석’이 생겨날 일은 앞으로 한동안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