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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를 반감시킨 액션멜로블록버스터, <니벨룽겐의 반지>
박혜명 2005-10-25

독일의 민족음악가 R.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독일의 오랜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보탄 신은 난쟁이족의 왕 알베리히가 황금을 훔친 대가로 반지를 빼앗고, 알베리히는 반지에 저주의 마법을 건다. 보탄 신은 저주를 이길 수 있는 인간 지그프리트를 창조하고, 자기 명을 어긴 딸 브룬힐데를 잠들게 한다. 반지를 되찾은 지그프리트는 잠들어 있던 브룬힐데를 깨워 사랑을 맹세하지만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과 그의 이복형제 군터의 모략으로 군터의 누이 크림힐드를 아내로 맞게 된다. 하겐과 군터는 지그프리트의 보물과 반지에 눈이 멀어 지그프리트를 죽이고자 한다.

총 4막의 오페라 중 지그프리트와 브룬힐데의 이야기를 담은 3,4막을 영화화한 <니벨룽겐의 반지>는 원작이 가진 비극의 원형을 고스란히 품는다. 지그프리트와 브룬힐데의 사랑, 여기에 끼어든 하겐의 누이 크림힐드와의 삼각관계, 지그프리트를 위협하는 하겐과 군터의 계략 등 큰 줄기도 같다. 탐욕과 질투에서 비롯된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는 지그프리트 설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한 요소다.

그러나 독일 감독 울리히 에델은 13세기 독일의 무명시인에 의해 쓰여진 바 있는 서사시를 <반지의 제왕>과 <타이타닉>의 조화물 정도로 바라본 듯하다. 인간의 나약함과 이기심이 야기하는 비극적 운명을 애통해하는 낭만적인 세계관은 사라지고, 원작의 뼈대 위에 붙는 것은 액션멜로블록버스터를 의도해 부풀린 살점들이다. 그러나 상업적인 센스도 뛰어나지 못하다. 산들로 굽이치는 북유럽의 광활한 풍광을 담은 것은 좋은데 상투적이기만 한 멜로신들은 까닭도 없이 늘어지고, 장엄하거나 스릴 넘쳐야 할 전투신은 자주 등장할 뿐 매력이 없다. 원작을 손질한 설정들은 드라마의 고전미를 반감시킨다. 실사 인물과 자꾸 분리돼 보이는 CG는 사소한 문제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브룬힐데 역을 맡은 크리스타나 로켄의 연기다. <터미네이터3>에 등장한 모델 출신의 여배우 크리스타나 로켄은, 캐스트 중 가장 현대적인 외모를 띠고 있어 역할에 제일 안 맞아 보이기는 하나, 가장 믿을 만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영화 상 몰입이 안 되는) 지그프리트와의 가슴아픈 사랑에 눈물을 머금은 순간이나, 태어나서 한번도 져본 적 없는 강한 여왕의 권위를 뿜어내는 순간의 눈빛은 잊기 어렵다. 게다가 무거운 양날도끼와 창검을 들고 손수 액션까지 해보인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가, 고문학의 아름다움도 오락영화의 장기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이 영화를 절반은 구제해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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