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명
정재영 | 지금의 좌우명은 행복이다. 내 주변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내가 모르는 사람도 내가 나온 영화를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황정민 | 거짓말하지 말자! (사이를 두고) 연기할 때 만큼은.
■ 내가 생각하는 나
정재영 | 우선 너무 게으르다. 부지런하면 연기도, 생활도 지금보다 나아질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내 장점을 굳이 따진다면 합리적이고자 애쓰는 것이다. 뭐든지 내 안에서 합리화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황정민 | 까탈스럽다고 해야 하나, 예민하다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백수’인 것 같다. 역할 중에서? 굳이 고르자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강수랑 가장 비슷하다. 삶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우유부단한 면도 있지만 환경의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면도 그렇고, 그 당시의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 시간이 나면
정재영 | 난 정말 취미가 없다. 일이 없을 때는 집에서 누워서 TV 보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아, 유일한 취미가 있다. 술 마시는 것. 신하균이나 송강호 선배와 잘 마신다. 황정민 |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책 보고… 방공호 판다. 지금까지 한 다섯개 팠으려나? (부연설명) 집에서 그냥 뒹굴뒹굴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백수’라고 칭하는 거다.
■ 배우가 안 됐다면
정재영 | 장사를 했을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 크리스마스용 포토 카드를 파는데 흑백은 300원이고 컬러는 500원이었다. 그런데 손님들 중 90%는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흑백 카드를 사더라. 그래서 컬러 카드 값은 그대로 두고, 흑백 카드는 600원으로 올렸다. 팔리는 건 똑같더라. 수박 장사, 찹쌀떡 장사도 잘했다. 황정민 | 대학 때 무대미술을 전공했으니까 목수. 아니면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주방장. 도예가 아님 화가? 닥쳐봐야 알겠지만,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면, 10년 정도 다른 일을 배우는 데 투자할 의향이 있다.
■ 현장이 싫을 때
정재영 | 영화마다 그럴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연기에 있어 뭔가 고민이 될 때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든다. 황정민 | (단호하게) 단 한번도 없었다.
■ 최근에 읽은 책
정재영 | 실비아 브라운이라는 예언가가 쓴 <대예언, 2008-2080>이다. 내가 이상하게 그런 데 관심이 많다. 우주, 천문, UFO, 불가사의 등. SF장르도 좋아한다. 황정민 |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존 그리샴의 <브로커>. 취향없이 잡다하게 읽는 편이다.
■ 노래방 애창곡
정재영 | 이승환의 <덩크슛>, 예민의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드라마 <파일럿> 주제가 등. 가사가 좋고 멜로디가 쉬운 노래가 좋다. 황정민 | 요즘은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 징크스
정재영 | 그런 건 정말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점도 안 믿는다. 황정민 | 없다. 전혀.
■ 나의 외모
정재영 | 이 얼굴로 배우 생활하고 있으니까 콤플렉스라고 느껴도 그게 복일 수 있으니까 어쩌겠나. 목소리는 마음에 안 든다. 내 소리가 워낙 허스키하고 탁해서 좀 투명한 소리를 갖고 싶다. 황정민 | 별 생각 없다. 배역에 몰입하고 고민하다보면 닮아가는 건데, 배우의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 잊을 수 없는 NG
정재영 | 정말 내고 싶지 않았던 NG는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때 5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있었다. 위에서 뛰어내리면 위쪽의 기계가 와이어를 붙잡아주도록 돼 있었다. 세 번째 뛸 때인데, 기계가 와이어를 잡는 순간 줄이 끊어졌다. 그래도 잠시 걸렸다가 끊어졌고 아래 매트리스를 놓아서 충격은 덜했다. 그러고나니 너무 무서웠다. 결국 10번인가 11번 만에 끝냈는데 오로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황정민 | <너는 내 운명>에서 어머니(나문희)와 싸우고 양잿물 마시고 하는 그 장면은 리딩할 때는 쉬웠다. 남자들은 크면서 부모랑 싸우고 그런 경험이 다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느낌이 잘 안 나왔다. 내 느낌이 거짓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한번 더 찍자고 부탁했다. 완성본에 들어간 것이 전날 촬영분인지, 다음날 건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재촬영본이라고 믿고 싶다.
■ 처음 본 영화
정재영 | 초등학교 때 미아리의 재재개봉관 삼양극장에서 본 성룡의 <사형도수>. 그때는 정말 홍콩 무술영화의 시대였으니까. 황정민 | <로보트 태권V>인가, <똘이 장군>인가? 아니, 최초의 영화는 아버지 손잡고 가서 본 <십계>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동생하고 명동에서 본 <E.T.>도 기억에 남는다. 그뒤에 영향을 준 것들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좀 머리 크고 나서 드나든 프랑스 문화원에서 보았던, 뭐가 뭔지 알 수 없던 영화들.
■ 가장 어려웠던 순간
정재영 | 20대 중반이다. 영화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모두가 외면했다. 생각만 조급하던 시절이다. 그때 무렵, “왜 이렇게 운이 없지?”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운이라는 것은 자기가 이렇게 길을 가고 있는데 저절로 와서 탁 붙는 거다”라고. 그 말이 그때 확 와닿더라. 그리고나서 편해졌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황정민 | 인지도 없어서 캐스팅 잘렸을 때. 어떤 작품인지는 말 못한다. (웃음) 해당 제작자들은 알겠지만.
■ 이런 시나리오는 사절
정재영 | 한마디로 정서가 없는 시나리오다. 캐릭터의 매력이 없거나 단순하기만 한 경우도 싫다. 황정민 | 그런 건 없다. 들어오는 모든 시나리오를 몇번씩 읽어보는데, 내가 동참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없을 때는 안 하게 되더라.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특별한 취향이나 기준은 없다. 날 감동시키는 이야기, 뭔가 그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한다. <여자, 정혜> 시나리오처럼 영화 같다기보다는 ‘우리 삶이 저렇지’ 싶은 이야기도 좋다.
■ 좋아하는 예술가
정재영 | 이외수씨다. 그 양반 정말 밑바닥이잖나. 그분 소설에는 정말 궁상맞은 게 나오는데, 너무 디테일하고 너무 리얼하다. 일본의 아사다 지로도 궁상은 마찬가지인데, 참 따뜻하다. 황정민 |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나이 들수록 멋있어지는 에릭 클랩턴과 로드 스튜어트, 차가운 느낌이 좋은 모딜리아니, 그림을 볼 때마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샤갈. 아… 렘브란트도 좋아한다.
■ 황정민, 어떤 배우인가
정재영 | 정민이는 나보다 훨씬 더 먼저 연극을 사랑했던 친구다. 음악쪽이며, 연기자가 가져야 할 다재다능한 면들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다. <바람난 가족>에서는 대학 시절 알던 황정민과는 다른 모습을 많이 봤다. 인물에 슥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다. <달콤한 인생>의 캐릭터는 너무 강렬해서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둘은 서로 보이지 않게 힘이 돼주고, 경쟁도 하면서 자극받는 관계가 될 것 같다. 하여간 예전부터 그랬듯, 그는 나와 비슷한 족속이다. 세련된 것보다는 투박한 느낌이 어울리는.
■ 정재영은 어떤 배우인가
황정민 | 연기, 진짜 잘한다.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에겐 범접 못할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뚝심, 느낌이 좋다. 특히 <아는 여자>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게 본 영화 중 하나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같은 영화에서 만나면 어떨까,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아니고, 40대 중반쯤? 찌릿찌릿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