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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칼럼] 삼순아, 금순아, 맹순아, 좀 설렁설렁 살면 안돼?

충분히 매력적이고도 아름다운 백수 건달 여자들은 없는가?

도대체 왜들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왼쪽부터 삼순, 금순, 영지

요즘 한국의 드라마는 가히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 여주인공들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외모가 인격인 시대는 지난 지 오래고(그렇다고 안이쁜 여자 탤런트가 주인공이 될 리는 없겠지만서두), 섹시해야 살아남는 시대도 지나가는가(여자 탤런트들의 섹시함은 여전히 짝짓기 쇼프로에서 진가를 발휘하지만서두)하면서 혼자서 앞질러 좋아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어떤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가로 그 인격을 가늠하게 되었다.

행복을 주는 빠띠쉐를 꿈꾸는 삼순이가 그랬고, 자기 이름을 내건 미용실을 갖고 싶어했던 금순이가 그랬다. 해리포터를 능가하는 동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영지가 <비밀남녀>란 드라마에서 지금 열심히 그러고 있다. 여자들도 백마탄 왕자를 만나는 것 말고도 그럴듯한 꿈이란 걸 갖고 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화장하고 옷 이쁘게 입는 것 말고의 그럴듯한 노력을 하며, 그 꿈을 이루었을 때는 다른 여자보다 이뻐서 남자 맘에 들었다는 것 말고의 그럴듯한 성취감에 몸을 떨 줄 안다는 것, 지금의 드라마들이 이런 것들을 그려낸다니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 이쁘면 용서되고, 섹시해서 당당하지만, 결국 한껏 치장한 집 한켠의 가구처럼 붙박이 되는 여자 캐릭터들에 비해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무엇을 꿈꾸고 사는가”가 그 여자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된 이 반갑고도 고마운 시대에 말이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들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왜들 그렇게 밤잠 새벽잠 안자고(안자는 건지, 못자는 건지) 노력하는 거지? 사실, 우린,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래 전부터,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냔 말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이야?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이 빵을 먹을 단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굽는다”라며, 듣는 이를 무한하게 감동시킬 멘트까지, 그것도 적절한 때를 골라가며 날려야 되느냔 말이다. 이렇게 내지르고 나니 <장밋빛 인생>에서 다 죽어가는 최진실의 절규와 왜 그리 닮아있는지 뜨악해진다. 헉.

꿈이 생존이 돼버릴 때, 그것은 두려운 일이 된다

꿈을 갖고 그 꿈을 좇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런데, 꿈이라는 것이 ‘멋진 나’를 만들어주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어버린다면 그건 최소한 행복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자기만의 스텝으로 다가서면서 인생의 풍요로운 묘미를 느끼게 해주어야 할 판타지가, 어느날 갑자기 밤잠 설쳐가면서까지 이루어야 하는 생존이 돼버릴 때, 꿈꾸며 산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 아니라 두려운 일이 돼버리지 않을까 싶은 거다.

꿈을 좇는 사람은 누구든 매력적이지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꿈을 갖고 기필코 이루어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섭다. 여자들이 꿈꾸는 수많은 이름 없는 꿈들이, 예쁘고 섹시한데다가 남자의 마음을 잘 살필 줄도 알고 게다가 멋진 꿈까지 갖고 있어야만 매력적인 여자로 완성된다는, 여자들 정말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 또 하나의 슈퍼우먼을 만들어내는 음모로 악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시부모 봉양하랴, 남편 없이 애 키우랴, 맨땅에 헤딩해서 미용사 되랴, 게다가 철없는 남자와의 연애질까지, 금순이의 하루하루가 ‘꿈을 좇아 아름다운 인생’만은 아니란 게 뻔하지 않는가.

내 인생 다 던져서 되고 싶은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 되고 싶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나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나 좀 이뻐해줘’라고 들이대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이고도 아름다운 백수 여자들이 드라마에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이란 게 별거 있나요? 하루하루 신나고 재미있게 사는 거죠”라고, “니 인생에 꿈은 뭐냐?” 라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질문에 설렁설렁 질겅질겅 대답할 수 있는 건달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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