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해가 거듭할수록 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 영화제는 올해 열돌을 맞아 더 분주해진 인상이다. 영화제 관계자들이야 매년 이맘때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 특별히 더 정신없어 보이진 않지만 여기저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인 해운대 주위 풍광은 예년과 확실히 달라 보인다.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너 해운대로 향하면서 영화제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가 부산영화제 못지않게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부산영화제 개막 5일 전부터 개막일까지 분위기를 담은 이번주 기획기사를 보시면 쉽게 실감하시리라). APEC 정상회의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런 변화의 바탕엔 영화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제 덕에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게 된 외국인이 얼마나 많을지, 부산과 친해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면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씨네21>도 지난 4월 10주년을 맞은 경험이 있어 공감하는 바이지만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에게 10회 영화제를 맞는 감회는 남다른 것 같다. 처음 영화제를 만들면서 관객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1회 영화제 개막 직전 남포동 극장가에서 매진을 알려온 순간 전율했다고 말했고, 첫 영화제 때 36살이었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인생의 황금기를 영화제와 함께 보냈다고 회고했다. 1회 부산영화제부터 데일리를 발행했던 <씨네21>도 할 말이 있다. 사진팀장 손홍주 기자는 영화제 때만 되면 김동호 위원장과 외국 게스트들이 남포동 포장마차 골목바닥에서 술 마시던 풍경을 찍은 기억을 털어놓는다. 한국영화의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씨네21>을 만드는 입장에서 가슴 뿌듯한 일이다.
부산영화제가 이룬 성과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이 영화제로 인해 비로소 한국과 세계의 진정한 영화교류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1회 영화제가 열린 1996년만 해도 우리는 자국영화와 할리우드영화를 제외한 분야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유럽영화 혹은 예술영화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도 충족시킬 길이 없었으니 아시아영화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 쇄국정책으로 우리가 가야 할 좌표를 찾지 못하는 상황, 그런 시점에 부산영화제는 말 그대로 영화의 바다를 눈앞에 펼쳐 보였다. 이것은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전후좌우를 그려 보였고 오랫동안 잃어버린 세계영화와의 동시대성을 자각하는 계기였으며 우리가 몰랐던 영화를 가르치는 일종의 영화학교가 됐다. 부산영화제의 성공적인 10년은 이런 자기 역할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영화제 이후 많은 영화제가 생겼고 몇몇 영화제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부산영화제가 이런 위기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부산영화제를 튼튼히 만드는 데 애쓴 관계자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밤은 부산영화제를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