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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뉴질랜드영화를 만나자, 제1회 뉴질랜드영화제
오정연 2005-10-14

10월12일 서울 시작으로 전주, 광주, 대구, 부산 순회

<뉴질랜드 이불 도난사건>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뉴질랜드영화는 <반지의 제왕>과 피터 잭슨, 웨타 스튜디오가 전부가 돼버렸다. 작년에는 뉴질랜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완성됐고 전세계적으로 예상밖의 흥행성적을 거뒀던 <웨일라이더> 등이 국내에서 개봉했고, 그보다 예전에는 <피아노> 등 제인 캠피온을 통해 뉴질랜드 영화를 만나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뉴질랜드와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는 10월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게 될 제1회 뉴질랜드영화제는 그처럼 낯설고도 익숙한 뉴질랜드 영화에 대한 믿음직한 지도를 그려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작년 뉴질랜드 전역을 순회하며 열렸던 한국영화제에 이어,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이 주최하는 이번 영화제에는 서울에서 일정을 소화한 다음, 전주, 광주, 대구, 부산을 순회하게 된다. 이 행사는 뉴질랜드 정부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앞으로도 이처럼 상대 나라의 영화를 자국에서 상영하는 행사가,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며 해마다 진행될 계획이다.

뉴질랜드 판타지, 호러 영화의 전통, 마오리 감독과 배우, 젊은 감독, 다큐 동시상영, 단편 등 얼핏 그 기준을 알 수 없는 섹션 구분은 뉴질랜드영화를 비교적 정확히 제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6개의 섹션에 포진한 22편의 영화들은 판타지와 호러 장르가 강세를 보이는 뉴질랜드 현대영화의 경향, 마오리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영화인들, 새로이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감독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역사를 지닌 뉴질랜드영화의 자화상 등을 보여준다.

‘뉴질랜드 판타지’ 섹션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뉴질랜드 고유의 자연을 십분 활용한 영화들이 포진해 있다. <뉴질랜드 이불 도난사건>(해리 싱클레어)은 2001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부천초이스 장편작품상을 수상한 수작. 사랑을 시험하다 곤욕을 치르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목장을 배경으로 마법 같은 우화를 풀어나간다. 뉴질랜드 출신 배우인 샘 닐이 주연을 맡은 <완전한 타인들>은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현실과 환상을 그림 같은 풍광에 대비시킨다. 한편 이처럼 완벽하게 느껴지는 자연환경은, 그 이면에 엉뚱하고 잔혹한 상상력이 포진하고 있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뉴질랜드에서 면면히 유지된 B급 호러의 전통은 젊은 시절의 피터 잭슨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호러영화의 전통’ 섹션에서는 피터 잭슨의 장편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를 포함하여, 악마를 소재로 한 전통적인 공포영화 <악마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진실>(글렌 스탠드링) 등을 상영한다. 여기까지가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스타 감독이 된 피터 잭슨을 포함하여 해리 싱클레어, 글렌 스탠드링 등 오늘날 뉴질랜드에서 자국의 영화산업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작품이다.

<전사의 후예>

작고 평화로운 뉴질랜드에도 그늘은 있다. 마오리 작가와 감독이 만든 최초의 장편영화 <나티>(베리 바클레이), 뉴질랜드의 박스오피스를 갱신한 1994년작 <전사의 후예들>(리 타마호리) 등 뉴질랜드의 소수민족인이 스스로를 표현한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작품들. 이와 함께 좁은 시장과 짧은 역사 등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 뉴질랜드의 영화를 내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 두편이 눈길을 끈다. 영화가 탄생한 뒤 70년간 자국영화를 가지지 못했다고 알려진 뉴질랜드에도, 실은 뛰어난 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피터 잭슨, 코스타 보테스)는,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희화화하는 유쾌함과 냉소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옛날 필름을 재현하고, 그 속에서 잊혀진 역사를 만들어가는 피터 잭슨의 천연덕스러움이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포가튼 실버>와 함께 상영되는 <샘 닐의 뉴질랜드 영화사 100년>(샘 닐, 주디 라이머)은 우울하고 음침한 요소를 가진 뉴질랜드 영화와 그 역사를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성찰한 다큐멘터리. 자국영화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다큐멘터리의 대비가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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