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 인상적인 마지막회에 관하여 써보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에 오늘이 가장 적당한 날인 것 같다. ‘드라마식’으로 써보자면, 이번 글이 내가 쓰는 ‘드라마 칼럼’ 마지막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회’라는 거창한 표현이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한국 드라마사상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회’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의지할 데라고는 나의 빈약한 기억 창고뿐이니, 또 한번 개인적인 감상평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본 드라마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내 머리 속에서 심하게 왜곡되었을 수도 있고, 비교적 최근 작품이라도 붕어에 가까운 기억력을 자랑하는 요즘이라 그마저도 온전한 모양새를 장담하기가 힘들다. 그저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이러저러한 모양새로 변형된 장면들을 읽는다는 재미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80년대 드라마 중에서는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주 어릴 때 본 거라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그 드라마가 보여준 치열한 삶의 기운은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특히 그 마지막 장면. 남성훈과 차화연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여주다가 ‘1년 후’라는 자막이 나오길래 내심 해피엔딩을 기대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회사에서 승진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을 싸늘한 시선으로 맞이하는 아내. 둘은 심한 말다툼을 벌이고, 남편은 아내의 뺨을 세게 때린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부부. 쾅! 쾅! 문 닫는 소리가 크게 두 번 들리고, 곧 자막이 올라온다. ‘그동안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헉 소리가 날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해피엔딩이 아닌 점도 놀랐지만, 아무 것도 결론짓지 않은 채 중간에서 툭 끊어버린 듯한 엔딩도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90년대 작품으로는 <서울의 달>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의 한석규와 채시라가 좋았다고 추억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편이다. 속마음을 숨긴 채 티격태격하는 남녀야 예나 지금이나 흔히 보는 캐릭터지만, <서울의 달>처럼 진지하게 묘사한 작품도 드물었다. ‘이루어질 것이 뻔한 남녀’의 달콤한 거짓말 싸움이 아니라, ‘진짜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절박함을 그렸다고 할까. (이 드라마를 멜로물로 한정 지으려는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한석규와 채시라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석규는 죽는다. 그리고 채시라는,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아주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한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차가워진 그의 입술에 키스한다.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가장 최근 작품으로는 조현재, 지진희, 수애가 열연했던 <러브레터>가 있다. 신부가 되려는 남자와 불치병을 앓는 여자의 사랑. 언뜻 진부해 보이는 소재였으나, 그 마지막 장면은 ‘진부함’이 어떻게 특별해지고 진실한 울림을 전해주는지 보여준 좋은 예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회에서 나는 식물인간이 된 여자와 그런 여자 곁을 지키며 신부가 되어있는 남자를 봤다. 바라던 결말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편안해 보이는 둘의 모습에서 묘한 허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눈을 뜬 그녀.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봐야 좋은 친구로 남을 뿐이잖아’ 생각했다. 여자는 휠체어를 타고, 남자는 휠체어를 밀고, 그렇게 평화롭게 부둣가를 산책하는 둘의 모습은,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언해피엔딩인지 나를 한참 헷갈리게 만들었다. 덧붙여 그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던 어린 아이의 목소리.
‘그래서 여동생은 해님이 되었고, 오빠는 달님이 되었어요. 끝~’
마치 해피엔딩인 것처럼 명랑하게 ‘끝~’을 외쳤지만, 참으로 슬픈 결말이다. 전래동화 속의 그 남매는 해님, 달님으로 오래오래 살겠지만, 서로 만날 수는 없는 운명인 것이다. 신부가 된 남자와 휠체어를 탄 여자. 이 둘의 운명이 해님, 달님 남매를 닮아 있구나 생각하니 그 애틋함이 오래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세 편의 드라마를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회’ 뿐만이 아니다. ‘마지막회’의 힘은, 그야말로 1회부터 착실하게 길러진 것이어야 함을 새삼 느낀다. 또한 ‘진심’을 그린 드라마는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사실도 알겠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 드라마의 세계에서도 통한다.
1회부터 착실하게 다져진 그 무엇은 없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쓴 글이었다. ‘칼럼’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던 초라한 글들,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