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은 사이코드라마와 에로영화 사이를 위태롭게 오간다. 시종일관 낮고 굵은 목소리와 무표정한 얼굴로 납치범 이와조노를 충실히 연기한 중견배우 다케나카 나오토의 에너지를 빌려 전반부는 심리묘사를 통해 긴장감을 끌어내는 드라마가 유지된다. 그러나 후반부는 급격히 조악한 에로영화로 돌변한다. 고지마 히지리의 관능적인 육체를 보여주기 위해 20여분 동안 집중된 정사장면은 개연성이나 심리 묘사도 부족하고, 화면의 아름다움도 느껴지지 않도록 관습적으로 구성됐다.
43살 독신남 이와조노(다케나카 나오토)는 조깅 중인 여고생 구니코(고지마 히지리)를 납치한다. 이와조노는 그녀를 수갑과 밧줄로 묶고 출근하기를 반복한다. 여름날 오래된 다가구주택에 갇혀 사육당하는 구니코는 점차 자신을 돌봐주고 설득하는 이와조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급기야 두 사람은 빨간색 오픈카를 타고 온천여행을 떠난다. 이와조노는 장난삼아 구니코를 제압하던 수갑을 자신의 손에 채우고 구니코는 이를 틈타 호텔을 나선다.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은 에로스(자기보존 충동)와 타나토스(죽음 충동)라는 프로이트의 오래된 짝패와 한때 일본 중년에게 유행처럼 번졌던 ‘정사’(情死) 개념을 뒤섞으려 한다. 의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캐릭터의 구축은 미약하다. 죽음과 관능을 한몸에 겹쳐놓으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이와조노와는 달리 구니코의 심리 변화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계기나 장치를 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최고의 음식이라며 구니코에게 장어를 내미는 이와조노와 맥도널드와 KFC에 길들여진 구니코의 입맛처럼 서로 동떨어져 있다. 관음증 환자처럼 집 밖에서도 구니코를 지켜보는 이와조노에 관해서는 시시콜콜한 과거까지 상세히 설명되는 반면, 구니코는 철저히 훔쳐보기의 대상으로만 다뤄진다. 극중에서는 이와조노에게, 극장에서는 관객에게 그녀는 그저 육체로만 보여진다.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조연들은 들러리처럼 과장된 인물로만 그려진다. 그나마 집주인 사키코 역을 맡은 와타나베 에리코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세일즈맨 모리야마로 얼굴을 내보이는 <철남>과 <총알발레>의 감독 쓰카모토 신야를 볼 수 있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