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로프트>의 촬영현장에서 만난 기요시는 “현대 일본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작품들보다 좀더 장르에 충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로프트>는 <회로>나 <큐어>보다 좀 더 장르적인 호러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으며, 주인공들을 음험한 사랑에 빠져들게 만드는 구로사와의 첫번째 로맨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프트>가 나카다 히데오가 규격화시킨 J호러 세계의 자장을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천년전 과거와 지금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고, 죽음의 그림자는 도돌이표처럼 주인공들에게 되돌아온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도 무섭긴 하지만)창문에 붙어 기어다니는 유령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넘어서는 순간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로프트>의 세계는 묵시록적인 울림을 지닌다.
현대 일본사회를 유령들의 무덤처럼 다루면서 인간 마음의 폐허를 끄집어냈던 <회로>나 <큐어>의 음미할만한 불편함과는 조금 다르지만, <로프트>가 보여주는 구로사와 세계의 황량한 풍광은 여전하다. “희망과 절망의 경계선을 담아내기를 노린다”는 구로사와의 말처럼, 그는 여전히 장르영화의 틀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출구를 찾아헤메고 있는 것이다. “영화 한편에 가능한 한 많은 가능성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일직선으로 결말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함께 오가는 이야기가 좋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체가 아닐까. 늘 작품을 하게 되면 정반대의 것을 동시에 놓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다”(구로사와 기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