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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4] - 중국감독열전 ③
글·사진 김수경 2005-09-27

“커져가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더 큰 부담”

<어제>의 촬영지 쓰훼이교 입체교차로에서 만난 장양

장양의 차를 따라 도착한 곳은 쓰훼이교 입체교차로였다. 자전거를 탄 행인들과 고가도로 위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가던 길을 멈춰선다. 잔디밭에 들어선 취재진과 긴 머리의 장양 감독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 열몇개의 다리들이 늘어선 광경이 보이는 이 입체교차로는 장양이 2001년 만든 <어제>에서 부자간의 교감을 보여주는 장소로 쓰였다. 장양은 베이징의 독특한 공간인 사합원, 후통, 동네 목욕탕, 100여개가 넘는 입체교차로 등을 자신의 영화 속에 즐겨 끌어들였다. 그의 작품 <샤워>에서는 좁고 후미진 베이징의 세부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생활상이 담겨져 있다. 장양은 영화감독 장화순의 외아들이다. “성장배경 때문인지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많이 찍었다. 현실에서는 예술의 견해차나 생활문제로 아버지와 오히려 자주 싸웠다. 어렸을 때 말썽을 많이 부려서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던 과거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인디언을 닮은 깊은 눈빛의 장양은 논쟁적이다. 2001년 <어제>가 발표되던 때 그는 “허우샤오시엔에 비해 왕가위의 미학은 가볍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건의 음악에 빠져 록그룹을 이끌던 그는 중국 언더그라운드 뮤직비디오의 포문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장양은 “중국 영화시장의 확대와 발전은 대세”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하지만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10년 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어제>는 1컷, <샤워>는 3컷, <애정마라탕>은 7컷을 편집당했던 검열에 대한 문제를 물었다. “소재나 시점을 제한하는 정치적인 압력은 줄어드는 중이다. 의지만 있다면 영화국의 검열이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못한다. 최근 2년간은 영화국보다는 투자자들의 제한과 수정요구가 커지는 부분이 감독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이라고 장양은 상업적인 간섭을 걱정했다. 그는 해외에서 제작비의 3분의 2를 조달한 <해바라기>를 곧 개봉할 계획이다. 이 영화도 “30년 동안 벌어지는 평범한 부자간의 이야기”다.

“아직도 독립영화는 학교, 살롱에서 상영된다”

예술인 마을 따산즈에서 만난 <첸모와 메이팅>의 류하오

베이징 외곽의 따산즈 예술구는 원래 798이라는 공장지구였다. 그러던 것이 영국의 슈펠츠 같은 예술인 마을로 변했다. 카페, 갤러리, 공방, 음악클럽, 부티크들이 공장건물 외양이 남아 있는 이곳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검은 연기를 내뿜던 798지구는 현재는 베이징의 대표적 문화명소이다. 한낮의 따산즈에서 빡빡머리의 괴짜 류하오 감독과 만났다.

류하오는 상하이 출신으로 회사 근처의 시네마테크를 들락거리다가 영화에 입문한다. “편안예술영화관이었는데 5세대 예술영화만 계속 틀어줬다. 워낙 자주 가니 직원이 ‘영화가 끝나고 새 영화가 시작할 때는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면 입장권을 안 사도 돼’라고 알려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혼자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촬영을 배우기 위해 베이징전영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뒤 전 재산 10만위안과 친구들에게 빌린 14만위안을 합쳐 16mm 데뷔작 <첸모와 메이팅>을 만든다. “1년 반 동안 빌린 제작비를 갚느라 베이징에서 달력을 팔았다”는 류하오는 편집 중에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그의 데뷔작은 스위스에서 35mm로 재생산되고 류하오는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도 중국에서의 독립영화의 운명은 대학교나 커피숍이나 바, 살롱에서 상영되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류하오는 상업영화에 강하게 반대하지도, 대작의 제작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지금이 문화대혁명 시기도 아니고, 정직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은 기존의 감독들에 비해 정치적으로 유연하다. “10년 뒤에는 나도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돈이 없어도 나의 영화에만 매진하고 싶다”는 류하오는 “영화를 만드는 게 아편과 비슷해서 그런가보다. 아편에 미치면 모든 가재도구를 팔아버리는 것처럼”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두 번째 작품 <큰 양 두 마리>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3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만든 블랙코미디 <큰 양 두 마리>로 류하오는 중국 일반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다.

“중국 관객에게 내 영화를 보여주는 데 8년이 걸렸다”

<세계>의 촬영지 세계공원과 지하 작업실에서 만난 지아장커

조악하게 흉내낸 세계의 유명 건축물과 황량한 벌판 탓에 퇴락한 대형세트장 같은 세계공원. 영화 <세계>의 주된 촬영장소였던 베이징 북태구 세계공원에서 지아장커를 만났다. 선전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의 개봉 로드쇼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귀환한 지아장커는 지쳐 보였다. 지아장커는 세계공원을 “세계를 축소했지만 이곳은 분명 가짜 풍경이다. 우리 생활도 이런 하나의 환각일 수 있다. 그것은 세계의 곳곳을 가공한 이 공원처럼 우리의 현실을 볼 수는 있어도 환각에 불과해서 그 생활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는 세계공원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어 시공간이 무화된 것처럼 모호하게 비춘다.

<세계>는 지아장커가 중국 일반 관객에게 선보이는 그의 첫 번째 영화다. 그는 “중국 관객에게 내 영화를 보여주는 데 무려 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현재 지아장커가 중국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문화적 측면 때문”이다. 그는 “신속한 경제변화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라는 <세계>의 주제를 관객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일상생활과 비교하면서 몰입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중국의 독립영화가 주류 배급사를 통해 극장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세계>처럼 직접 홍보와 배급까지 하면서 경험을 쌓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작품에서 새로운 스타일은 계속 시도하겠지만 주된 관점은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미학적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차기작은 “<세계>의 연작이 될 만한 실험성 짙은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이 영화는 “도시 밖에서 사는 사람들과 말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을 다룬다. 한편 그는 조만간 빔 벤더스와 자신을 포함한 다섯명의 감독과 함께 “미국의 이방인”에 관한 장편도 만들 계획이다. “이제 중국영화는 지상과 지하가 아닌 독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지아장커는 아직도 2000년부터 사용해온 베이징의 ‘지하’ 작업실을 떠날 생각이 없다.

“감독은 제도적 문제와도 직접 부딪쳐야 한다”

자금성 내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커커시리>의 루추안

<마지막 황제>를 자금성에서 촬영하기 위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실제로 필요했던 공간의 다섯배가 넘는 면적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촬영허가를 받아야 했다. 자금성은 촬영허가가 까다롭기로 외국 영화사에 이름난 곳이다. 한데 루추안의 영화사 사무실은 자금성 내부에 있다. 외부는 사원의 경내를 떠올리게 하고, 내부는 카페 같은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영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날카로운 인상의 루추안은 영화감독보다는 젊은 비즈니스맨처럼 느껴진다. 2004년에 개봉한 그의 대표작 <커커시리>는 그해 중국에서 가장 DVD가 많이 팔린 작품이며 10개의 극장에서 단 66개의 프린트로 500만위안을 상회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그는 군사학교와 군인 생활을 거쳐 영화감독이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영화를 찍는 것은 전투와 유사하고, 일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점에서도 군 생활은 많은 도움을 준다”고 루추안은 설명했다. 고산지대에서 4개월간 촬영된 <커커시리>의 제작과정은 지난했다. 미국인 스탭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대부분 다른 인력들도 고산병에 시달렸다.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촬영된 극영화”인 <커커시리>는 두명의 주요 배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을 출연시켰고 “그중 일부분은 진짜 사냥꾼”이었다. 모든 대사도 장족의 언어로 녹음되었다. 해피엔딩이던 원래 시나리오의 결말을 수정한 이유를 묻자, “영화를 찍으면서 매우 절망스러웠다. 가끔 모든 스탭들이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곳에 해피엔딩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루추안은 밝혔다. 그는 지하영화의 “중국인의 일상을 포착한 업적”을 인정하지만 자신은 “주류영화 그리고 지상영화를 견지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루추안은 “감독은 영화국이나 여러 가지 제도적 문제를 직접 부딪쳐서 이야기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동경하고 한국영화에 큰 관심을 가진 루추안은 오는 9월에 신장으로 가서 “문화대혁명 시절의 아이들에 대한 성장담”을 다룬 신작에 돌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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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인디컴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