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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3] - 중국감독열전 ②
글·사진 김수경 2005-09-27

“문화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

라이브 카페에서 만난 <색을 보여드립니다>의 최건

육교 아래 위치한 베이징 CD 재즈 카페. 한적한 오후에 문을 열자마자 때아닌 록음악의 굉음이 쏟아진다. 평평한 무대에 원형으로 둘러서서 ‘베이징 록의 대부’ 최건과 그의 멤버들이 신나게 리허설을 하는 중이다. 장위안 감독은 “중국 록의 기억은 최건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살육당한 시위대의 주제가로 쓰였던 <일무소유>(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는 최건을 천안문 세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로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그는 “음악영화이며, 한 가지 노래로 세 인물의 이야기가 묶일 것”이라고 새 영화를 전망했다. 여기서 인물이 의미하는 세 가지 색은 각각의 음악과 연결된다. “파란색은 전자음악, 빨간색은 록, 노란색은 팝”을 뜻한다. 그는 “경제 발전은 매우 빠르지만 중국의 문화나 정치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현실을 평했다. <일무소유>의 불법음반은 최저 1천만장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불법복제의 최대 피해자인 그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최건은 “대부분의 영화를 불법 DVD로 본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극장에 상영되거나 볼 수 있는 영화는 불법판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예술영화는 불법판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북경 녀석들>에 출연했고 장원의 <귀신이 온다>의 음악을 맡기도 한 그는 “중국 영화감독들은 세대보다는 감독 개인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인감독의 입장에서 중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장애는 “영화국이 창작자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은 엄격한 사전 시나리오 검열을 거치지 않으면 아직도 합법적으로는 제작에 착수할 수 없다. “영화예술의 높은 파급력에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다”는 츠이지엔은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미래를 지나치게 고려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쇼이스트가 제작비 3분의 1을 투자한 그의 신작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제작은 필립 리가, 촬영은 크리스토퍼 도일이 담당한다.

“감독의 관점을 표현한 작품이 가장 강력한 예술”

아파트에서 만난 <북경 녀석들>의 장위안

길 건너에는 황량한 들판이 펼쳐진 한적한 주택가의 아파트. 6층으로 올라가 두꺼운 철문을 두드린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혹시나 싶어 반대편 문을 두드리자 젊은 청년이 얼굴을 내민다. 그의 안내로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집안으로 들어서자 환한 내부가 펼쳐진다. 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6세대의 맏형 장위안 감독과 만났다. 굵은 웨이브의 곱슬머리, 화려한 셔츠 차림의 그는 “엄청나게 변해버린 현재의 베이징”을 굵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북경 녀석들>은 1992년에 촬영되었다.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알게 된 츠이지엔과 그는 베이징의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다녔다. “당시에 촬영된 모습들은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올림픽을 앞두고 급변하는 베이징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동궁서궁> <광장> <아들들>을 통해 당국과 빈번한 마찰을 빚었던 장위안은 1997년에 개봉되어 중국 일반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설에 집으로 돌아가다>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설에…>를 찍으며 “당국이 정한 제작, 소재 선정, 심사 기준을 고려해 꼭 국내개봉하겠다고 결심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녹차> <너를 사랑해> 같은 신작에서도 “저예산이지만 쉬징레이, 장원, 자오웨이 같은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고려했다.

그는 예술가의 저항정신을 논하면서 전과는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예술이 사회나 정치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항이 처음 직면하는 주체는 무엇보다 창작자 자신이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관객과의 관계에 대한 의견은 “개성적이고 감독의 관점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일수록 일반 관객이 좋아하기 어렵다. 하나 그것은 가장 강력한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작가주의적 견지를 굽히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고수했던 장위안 감독의 차기작은 의외로 “서너살 먹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아동영화”다. “상업영화인지 예술영화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이 영화에는 그의 딸도 출연할 예정이다.

“5세대의 상업적 행보는 그들의 자의적인 선택이다”

<낮과 밤> 첫 시사회장에서 만난 왕차오

허우하이 호수 근처의 시네마 카페. 약간은 어두컴컴한 내부로 들어서면 프로젝터 앞에는 20대 초반의 중국인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앉아 있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노트에 뭔가를 적으면서 프로젝터를 바라본다. 부산국제영화제 PPP 프로젝트였던 왕차오의 <낮과 밤>이 중국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순간이다. 길을 헤매다 늦게 도착한 왕 감독의 “맥도널드나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중국 차를 마시는 기분으로 감상해줬으면 한다”는 인사와 함께 상영이 시작된다. 신작 <낮과 밤>에 대해 왕차오는 “<안양의 고아>가 외부 현실을 반영한다면 <낮과 밤>은 인간 내면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영화그룹과 프랑스가 합작한 100만달러 규모의 <낮과 밤>은 왕 감독이 “체제 내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이다. 제작 규모는 커졌지만 프린트에 담긴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년간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27살에 뒤늦게 영화공부를 시작한 왕차오의 이력을 반영하듯이 <낮과 밤>은 특유의 관조하는 롱숏과 풀숏으로 노동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그는 “그것은 중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관점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모습은 “사회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가 동일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영화의 시스템과 영화산업의 상황에 대해 묻자, 왕차오는 “상업적인 시스템과 심사제도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영화인들은 손이 묶인 상태로 일을 해야 하는 답답함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첸카이거의 조감독 출신인 왕차오는 5세대의 상업적인 행보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의적인 선택이고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다”라고 평하며 “그것은 예술과 미학의 실패라기보다는 자의적인 철회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영화감독이 된 뒤 달라진 점을 묻자 “노동자일 때보다 노동강도가 더 크다”고 웃으며 답한다. 영화노동자임을 잊지 않는 왕차오의 차기작은 “한 늙은 교수가 노동자로 일하다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도시를 헤매는 이야기”라고 한다. 왕차오의 <낮과 밤>은 지난 6월에 중국에서 개봉되었다.

“<북경자전거>의 수난은 허름한 후통의 모습 때문”

왕징 사무실에서 만난 <상하이드림>의 왕샤오솨이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왕징에는 <북경자전거>를 만든 왕샤오솨이 감독의 영화사가 있다. 작고 깔끔한 사무실에 다닥다닥 직원들이 붙어 앉아 있다. 빡빡 깎은 머리에 선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이한 왕 감독은 자신이 처음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를 회상했다. 창밖을 보며 그는 “1981년이었는데 이곳은 전부 밭이었다. 십몇년을 개발해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신작 <상하이드림>에서 고향 꿰이양의 모습이 세대에 따라 달라 보이는 시각차가 베이징의 변화된 모습으로 그대로 투영되는 순간이다. 사무실에서 그가 십여분 정도 보여준 <상하이드림>은 “<북경자전거> 때 3년에 걸쳐 애를 먹였던 심사기간”도 9일 만에 통과했다. 지난해 초 감독 금지가 풀리고,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편 3년 만에 해금된 대표작 <북경자전거>의 상영을 묻자 “불법판이 너무 오랫동안 많이 퍼져 극장상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그는 답했다. 덧붙여 영화국의 요구로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북경자전거>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황당하다. 베이징의 후통(골목)을 구석구석 촬영한 이 영화에 대해 당국은 “베이징의 아름답지 못한 골목들을 너무 많이 촬영했고 고층건물을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면이 없어서 베이징의 올림픽 개최 신청에 영향을 준다”고 퇴짜를 놓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직후 베이징의 후통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했던 중국영화는 오랫동안 국내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후통처럼 극장들도 하나씩 사라져갔다”고 왕샤오솨이는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자신이 출연한 지아장커의 <세계>의 지상 상영에 대해서는 “우리는 서로 돕고 격려해야 한다. 다만 내 연기는 너무 어색하다”며 쑥스러워했다. 다음날 우리는 <상하이드림>이 제5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축하차 전화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뒤 그가 <상하이드림>으로 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사실과 6월 극장개봉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는 낭보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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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인디컴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