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레퍼토리가 있다. 세대 갈등과 정체성 혼란의 테마,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 저예산 독립 제작 방식, 스테레오 타입에 갇힌 캐릭터.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개봉한 <해롤드와 쿠마>에는 그중 해당사항이 하나도 없다. 스타도 아니요 백인도 아닌 아시아계 청년 둘을 짝지운 이 영화는 개봉 주말 흥행 7위라는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쳤고, 무명에 가깝던 한국계 배우 존 조는 <피플>의 ‘매력남’ 리스트로 뛰어들었다. 아마도 이 영화와 배우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가벼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변에 흔하지만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시아계 친구들의 모습이 코믹하게 녹아든 이 판타지적 성장담은 보는 이가 누구이건 받아들이고 즐기기에 별 이물감이 없다.
해롤드와 쿠마는 흔히들 ‘루저’라고 말하는 그런 인간형이다. 한국계인 해롤드(존 조)는 소심한 일벌레로 직장에서 노골적으로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면서도 항의할 줄을 모르고, 인도계인 그의 친구 쿠마(칼 펜)는 의사 집안의 전통을 잇는 것보다는 고급 대마초를 구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마초 기운에 취해 허기를 느끼던 해롤드와 쿠마는 TV에서 ‘화이트 캐슬’이라는 햄버거집 광고를 보고, 그 햄버거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밤거리를 헤매면서 기상천외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튿날, 이들은 더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지만, 그건 “햄버거 먹고 변신”한 게 아니라, 밤새 겪은 모험의 흔적이다. 여기서 해롤드와 쿠마는 ‘소외받는 유색 인종’이긴 하지만, 사실 그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햄버거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떠난 하룻밤 여행의 막바지에 쿠마가 “우리 부모님들은 그 많은 박해와 배고픔을 견디셨다”고 부르짖는 (정말 우스운) 대목에 이르면, 정체성과 행복 찾기를 거창하게 다룰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들기도 한다.
<해롤드와 쿠마>와 쌍둥이처럼 닮은 영화가 감독의 전작 <내 차 봤냐?>다. 감독 대니 레이너는 자신의 전작에서와 비슷한 인물들을 내세워 비슷하게 황당한 사건사고를 겪게 만들고, 심지어 “내 차 봤냐?”는 대사까지 읊게 한다. 이 영화로 주목받은 존 조의 매력을 느끼고 가능성을 헤아려보는 재미도 있지만, 실명 그대로 출연하는 <천재소년 두기>의 닐 패트릭 헤리스와 재회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