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짧다. 그러나 이야기는 엉킨 실타래 같다. 한국판 제목만 보면 일본으로 간 서양 10대 여성의 성 편력기 같지만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복잡한 영어 원제만큼이나 이 영화는 장르와 인간에 대한 복잡한 탐구를 담고 있다. 원제는 ‘성층권, 최고 수준의, 고도로 추상적인’ 등의 뜻을 품고 있다.
도쿄의 밤거리를 뒤로 하고 금발의 젊은 여성이 어딘가를 보고 있는 영문 포스터를 보면 이 영화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연상시킨다. 스웨덴에 사는 안젤라(클로에 빈켈)는 그림에 재능이 있다. 훌쩍 도쿄로 가보고 싶어 일본 친구 야마모토의 주선으로 도쿄 유흥가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다. 안젤라는 첫 출근부터 뭇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동료들은 질투에 사로잡혀 국수에 유리조각을 몰래 넣는가 하면 안젤라의 윗도리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앨프리드 히치콕을 흉내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일까 아니면 미카엘 하네케쪽일까. 영화는 숨바꼭질하듯 관객의 추리를 한발씩 앞서 나간다.
밤새 술집에서 일하고 낮에는 아파트에서 5명이 한꺼번에 사는 젊은 여자들의 이야기 속엔 시기와 갈등, 질투가 있다. 그러나 안젤라는 갑자기 실종된 러시아 여성을 찾는 전단을 들고 거리를 찾아 헤매고, 이번에는 아벨 페라라 영화에서 봤음직한 으스스한 뒷골목과 백인 남성들이 나온다. 휠체어에 앉은 채 돌아다니는 술집 주인, 불법취업한 백인 호스티스들의 돈을 맡아주는 남자, ‘알프스 소녀 하이디’풍으로 입고 나오면 팁을 두배로 주는 백인 남자들이 이런 의혹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안젤라가 틈틈이 습작으로 그려보는 만화들이 줄거리와 맞물리면서 스릴러적인 분위기가 깔린다. 그러나 그림과 줄거리가 어긋날 때, 그리고 안젤라의 기억이 앞뒤가 안 맞을 때 영화는 관객의 추리를 또 한발 앞서 나간다. 그때 우리가 보는 것은 프랑수아 오종의 에로틱 스릴러다.
안젤라의 술집 동료들과 이 수상쩍은 남자들이 과연 어떤 드라마로 묶일까 하는 의심은 끝까지 가봐야 겨우 풀린다. 제목에 혹해 도대체 언제나 야한 장면들이 나올 것인가 하는 기다림으로 영화를 본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영문 포스터에 적힌 ‘상상력이 당신의 피난처’라는 카피를 유심히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