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트리나가 몰고온 재앙의 무게에 가려 빛을 잃었지만 미국 게임 업계에도 <뜨거운 커피>(Hot Coffee) 라는 작은 태풍이 강타했다. ’힐러리 클린턴 대 <뜨거운 커피>와의 전쟁’이라고도 알려진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유례없는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악명 높은, 그러나 PS2 최고의 인기 아이템으로 알려진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Grand Theft Auto) 게임 시리즈를 제작해온 록스타 게임사. <GTA 샌 앤드레아스>(San Andreas)는 소프트웨어 심의 등급이 ‘성인 전용’으로 재조정되고, 일반 판매는 중지되었으며, 미 연방무역협회가 록스타 게임사의 모회사 공식 수사에 들어가는가 하면, 여차하면 의회 청문회까지 열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풍의 발단은 <GTA 샌 앤드레아스>의 모드판(Mod: modification의 준말로 정품 컴퓨터 게임의 변형판)으로 알려진 <뜨거운 커피>에 담긴 포르노에 가까운 노골적인 섹스신. 지난 6월 <뜨거운 커피>를 빌미삼아, 클린턴 상원의원이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게임 업계의 규율을 강화할 것을 제청하고 나서면서 게임 업계 전체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는 정품에 이미 숨겨져 있던 이미지들을 해독해서 인터넷 버전으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모드 제작자와 이것이 해커의 순수한 창작물일 뿐이라는 록스타 게임사쪽의 해명이 엇갈려 누구에게 책임 소재가 있는지 관심을 모아왔다. 결국 수개월의 심사 결과, <뜨거운 커피> 외전의 선정성이 도마에 오르기 이전에도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샌 앤드레아스는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한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을 내세워 폭력성과 범죄를 부추긴다고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받아온 <GTA> 시리즈쪽이 유죄 판결을 받고 말았다.
이번 사건이 록스타 게임사의 비운을 떠나 흥미로운 이유는 대중문화 등장 이래 끊임없이 변주되어온 ‘미디어 해악론’을 둘러싼 논쟁이 태풍의 핵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청소년은 미디어의 호환마마에서 보호되어야 할 순수하고 수동적인 대상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해석 능력을 갖춘 주체적인 수용자인가라는 문제에서부터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게임, 인터넷에 이르는 대중 미디어의 고유한 표현의 특성을 고려한 윤리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각종 모드판이 범람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에서 진정한 창작자는 누구인가,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보수적인(혹은 보호적인) 청소년 미디어 정책을 펴온 민주당의 색깔 논쟁까지 감안하면 <뜨거운 커피>의 여파는 쉽게 식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