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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뉴웨이브영화제 마스터클래스 [4] - 차이밍량 ②
정리 이종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5-09-13

차이밍량 마스터 클래스 질의 응답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도 생활이다

김소영 차이밍량은 자기만의 전통을 만드는 감독이다. 자기 영화를 가지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방식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만의 고민과 방식을 보여준 강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방금 상영된 <구멍>의 창작 배경을 듣고 싶다.

차이밍량 지금까지 어느 제작자, 투자자도 내 제작에 간섭한 적이 없다. 그런 자유를 누리는 건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영화엔 개인적인 표식, 상징이 드러난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거다. 그게 자라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어떨 때는 성장을 멈추기도 하지만 갑자기 가지가 튀어나오고 잎이 나오기도 한다. 내 모든 작품은 내 생활과 관계가 있다. <구멍>을 찍기 전에 잠시 세 들어 살던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 밑층이 물이 새서 배관공을 불렀다. 그가 밑을 드러내서 파봐야겠다고 해서 구멍이 만들어졌고(영화처럼) 어느 순간 또 배관공도 없어져서 한달 동안 거실에 구멍이 난 채로 그대로 있었다. <하류>를 찍기 전, 어느 제작자가 밀레니엄에 대비해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했다. 내게 다가올 2000년의 미래를 예지하라는 말과 같았다. 답은 간단하다. 그럼 계속 비를 내리게 하는 거다. (웃음) 그러나 후회했다. 그뒤로 <하류>를 찍었는데 <하류>도 물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영화의 의도는, 끝까지, 나쁜 상황으로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가다보니 영화가 절망적이고 냉혹하지 않나 싶어 절망적 현실 맞은편에 30년대 이후의 오래된 노래를 집어넣었다.

김소영 <하류>엔 아들과 아버지의 문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되며 <지금 거기는 몇시니?>에도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색다른 방식으로 해결된다.

차이밍량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의 눈으로 내 영화를 보는 거다. 영화는 보는 예술이다. 동시대 관객은 ‘영화란 보는 것’이란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의 얘기는 모두 똑같다. 영화 이야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회화를 한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의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 모두 다 다르게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내 관객은 내 영화에 곤혹스러워한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난감해한다. 그러나 그런 게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던지는 질문은 ‘영화는 무엇인가’이다. 영화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오락이지만 단순히 오락거리로 치부하기에는 안타까운 무엇이다. 솔직히, 영화를 찍으며 관객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생활이 내게 가져다준 곤혹스러움, 문제제기를 끌어안고 가는 것뿐이다. 답안을 찾으려 하지만 찾지는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답안은 주어지지 않는다. 영화 찍는 건 내 생활에 대한 검토다. 예를 들어 왜 조부가 죽었을 때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하는 것 말이다. 창작자로서 이 요소로만도 내게 충분하다. 어느 분야에 어떤 예술도 인류를 도와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대량 생산되는 오락성 짙은 영화들이 던지는 해결 방법을 믿지 않는다. 내 영화의 특징은 생명에 대한 탐색이자,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의 마지막은 항상 이강생의 얼굴인데 그와의 작업을 통해서 생명의 과정들, 배우의 소소한 변화를 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영화라는 굉장히 얻기 힘든 기회- 매체를 통해서 생명을 담아내는 것이 내겐 큰 의미가 있다.

관객 영화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

차이밍량 영화가 날 선택했지 내가 영화를 선택한 거 같지는 않다. 도쿄 시부야에서 한 미국인을 봤다. 큰 비닐 봉지에 나무로 만든 1회용 젓가락, 그릇을 가득 담아 두고선 그걸 사용해선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걸 보았다.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에서 그런 일을 하다니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가 선택 했을 테지만, 내 느낌은 하늘에서 이 사람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죄송하다. 전도사처럼 얘기해서. (웃음) 내가 태어났을 때는 영화 황금기였다. 매일 영화 두편을 보며 자랐고 대학에서도 희곡을 전공했고 이 과정이 내 선택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힘이 영화의 길로 밀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영화가 환영받고 인정받기 때문에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슬프다. 지금도 도대체 내가 뭘 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고 그럴 때 슬프다.

관객 연출 지망생인데 만든 단편이 소통에 실패했다. 실패한 이를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차이밍량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는 거다. 그걸 가르치는 학교도 없다. 이건 천재론이 아니다. 졸업 뒤에 전기공 등 여러 일을 하며 10년이 지나서야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경탄스런 부분이 있는데, 길가에서 국수를 파신 분이다. 값싼 국수일지언정 그릇마다 맛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 싸구려 국수로 7남매를 기르셨다. 영화를 만들며 부닥치는 문제를 누가 도와줄 수는 없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도 생활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나중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연출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영화엔 연출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이 있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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