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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의 <형사 Duelist> [3] - 포토코멘터리 ①
김도훈 2005-09-14

장인정신이 빚어낸 빛나는 순간들

이명세 감독이 손수 <형사 Duelist>의 베스트 장면 10개를 선정해주었다. 그가 직접 손으로 뽑은 장면 중에서는, 관객이 오랫동안 기억할 순간도 있고, 배우들이 남몰래 자랑스러워할 순간도 있으며, 감독의 마음속에서 더욱 크게 자리잡은 순간도 있다. 이명세 감독과 이형주 미술감독으로부터 가장 빛나는 순간들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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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명세/ 칼빛과 황금빛이 감도는 의상까지, 정말 화려한 장면이다. 그 느낌이 더 잘 전달되도록 동판을 하나 구해오라고 해서 붙여놓았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감독님. 이거 너무 이상해요. 왜 이거 붙이셨어요”라면서 의아해하더라. 스탭들도 다들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이어서 나중엔 “이 사람들이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일지도 몰라. 그래서 석양빛이 나는 구리판을 붙여논 거야”라고 말해줬다. 기껏 설득시킨다는 게…. (웃음)

이형주/ 가난한 빈민들이 사는 공간이다. <취화선> 세트에서 작업을 했는데, 두꺼운 천은 날리지 않으니까 쓸 수가 없고, 망사 같은 천을 사용했다. 천이 겹겹으로 있어도 빛이 통과해서 비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동판도 하나 놓았다. 얇은 천과 동판을 설치하니까 조명이 번져서 빛이 슬픈눈에게 확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나온다. 판타지의 느낌이라고 할까. 준비하면서 가장 애를 먹은 장면이기도 하다. 새로 산 천을 세탁기로 다 빨아서 하늘하늘하게 만들었는데 기껏 그래놨더니 얼어서 뻣뻣해져버렸다. 첫 추위가 몰려왔었거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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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이명세/ 슬픈눈이 돌담길에서 대결하다가 남순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꼽은 이유는 지원이가 제일 예쁘게 나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춘사관(서울종합촬영소의 숙소)에서 살던 애가 전날은 집에서 엄마랑 자고 왔거든. 돌아와서 이 장면을 찍는데 피부가 너무 촉촉한 거야. 하루 만에 성형을 하고 올 리도 없고. 지원이 말로는 장어를 먹어서 그렇다는데. 이 장면이 원래 걸걸한 남순이가 여성적인 느낌을 처음으로 발하는 장면이지 않나. 거기에 딱 맞춰서 지원이 얼굴도 촉촉한 게 느낌이 달라졌다. 혹시 화장품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화장품도 뺏어서 써봤다니까. (웃음) 사실 이 장면은 강동원이 뽑은 베스트 장면이다. “지원이 누나가 이때가 제일 예뻤었다”더라고.

이형주/ 감독님 요구는 돌담길 세트를 “길이가 길고 끝이 없는 것처럼 만들자”는 거였다. 그래서 벽을 약간 휘어 보이게 만들었다. 한쪽 벽은 바퀴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는데, 좁은 것 같다가도 한순간에 공간이 넓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사실 지금보다 조금 더 길게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만큼 넓은 세트장이 없어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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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명세/ 마지막 판타지 대결 속 장면들이다. 동원이 얼굴이 좀더 남성적으로 나온다. 죽고나서 오히려 더욱 현실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한거다. 목소리도 현실감 있는 사운드로 나온다. 슬픈눈의 목소리는 마지막 이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내내 어디선가 울리는 듯 들려오지 않나. 에코를 넣은 것은 아니고. 비밀인데, 앞뒤로 서라운드를 넣은 거다. 슬픈눈이 정말로 남순에게 말을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묘하게 들린다. <형사 Duelist>는 모두 후시녹음을 했다.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으면 다시 하자는 생각이었다. 할 수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우리야말로 진정 서비스 정신에 충실한 사람들 아닌가. (웃음) 판타지. 일상성의 판타지.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일상의 공간이 일순간에 환상으로 변하는 게 진짜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형사 Duelist>는 톨킨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 그런 일상성의 판타지다. 참. 탱고 추는 장면도 있었는데 다 빼버렸다. 대결 자체가 춤이 되는데 굳이 춤을 집어넣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형주/ 판타지 대결 장면은 검은 배경막을 치고 돌담 옆의 세트에서 찍었다. 처음엔 돌담에서 액션을 하다가 점점 어둠 속으로 묻히면서 판타지의 세계로 빠지는 컨셉이었다. 일부로 좀 애매하게 만든 장면이다. 슬픈눈의 옷은 일부러 붉은 색조가 감도는 것으로 바꿨다. 옅은 붉은색으로 슬픈눈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거 찍을 때 돌담길 세트는 철거 중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고생 많았다고 하지만 모든 미술팀이 정말 큰 보람을 느끼는 듯하다. 감독이 미장센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워낙 미술적인 것들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미술팀이 충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도 투철했고. <형사 Duelist>를 하고나니 영화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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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명세/ 이건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베스트 장면이다. 나도 좋아한다. 동원이가 죽는 장면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디졸브를 해서 붉은색의 느낌을 조금 싣긴 했지만 아사무사 처리한 거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사실 <식스 센스>의 반전처럼 의도한 건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 (웃음)

이형주/ 병조판서의 죽음은 확연하게 드러나는 죽음인 데 비해 슬픈눈은 그냥 무언가에 묻혀버리는 듯한 죽음이다.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다. 뒤에 이어지는 환상 속의 대결장면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감독님이 더 잘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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