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마루는 ‘거칠다’와 ‘높은 곳’을 뜻하는 우리말 ‘마루’를 합한 것이니 직역하면 ‘거침없는 고수’쯤 된다. 거칠마루는 무협사이트 무림지존닷컴의 최고실력자다. 나 홀로 무술을 단련하는 이들은 온라인 위에서 글로만 떠다니는 그를 동경하는 동시에 의심한다. 오프라인의 육체는 그의 글처럼 정말 고수일까, 그의 인격은 무술만큼 빼어날까. 마침 거칠마루가 자신을 드러내겠다며 8명의 무술인들을 선택해 강원도 오지로 초대한다.
거칠마루와의 멋진 대련을 꿈꾸며 캠핑카에 오른 이들이 진짜 무술인들이라는 건 이 영화의 큰 개성이다(직업연기인은 천장지구 역의 성홍일 한명이다). 택견, 우슈, 씨름, 무에타이 등을 연마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고루 나눠갖고 있는 이들에게 와이어 액션이나 스턴트 대역은 불필요할 것이다. 실제 무술인들이 실제에 가까운 날것의 무술을 예고하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거칠마루>는 영화의 본령으로 돌아간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글과 말로만 떠다니는 거칠마루의 불투명한 정체를 미스터리의 장치로 삼고, 단 한명과만 싸우겠다는 거칠마루의 선언에 따라 무작위로 벌어지는 토너먼트 대결의 무규칙성이 활력으로 작용한다. 또 언제 어디서 대결을 벌이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구조 속에 가짜 고수가 끼어들고 무술의 예의를 배반하는 거짓이나 이들을 훼방하는 공권력의 등장이 추임새 구실을 한다.
하지만 승부수는 그 너머에 있다. 홀로 무술을 연마하면서 자신이 어디쯤 도달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본원적 열망을 이야기의 기본 동력으로 삼으면서도 도장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단련한 육체가 거리의 생존경쟁에서 거칠게 습득한 육체와 부딪혔을 때의 충돌과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고 간다. 무도라 불리는 고매한 무술의 세계를 의심하고 시험해보면서 거칠마루의 탄생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방송다큐멘터리에서 소재와 주연을 얻은 김진성 감독은 <서프라이즈>로 장편 데뷔를 하고나서야 먼저 구상했던 <거칠마루>를 야전치르듯 완성시켰다. 1억원에 못 미치는 제작비가 뽑아낸 거친 입자의 생경함이 초반에 낯설겠지만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싱싱한 에너지로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