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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이방인의 첫걸음, <러브토크> 촬영현장

이윤기 감독의 신작 <러브토크> 촬영현장

지난 8월28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이윤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러브토크>의 엔딩신 촬영을 앞두고 짧은 비가 짧은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간다. 제작부가 뿌리는 인공 비는 아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막 돌아온 써니(배종옥)가 여행가방에서 레인코트를 꺼내 입는다. 꼭 비 때문은 아니다. 사시사철 따뜻한 LA에서 짧은 여름옷을 입고 떠나온 그는 이곳 행인들의 긴 옷 틈에서 외로운 한기를 느낀 참이다. 옷을 여미듯 생각도 다시 여며야 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마포구 신수동 거리가 낯익다.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 <여자, 정혜>가 누볐던 곳이다. 아닌 게 아니라 써니가 사라진 골목 끝에서 정혜(김지수)가 걸어나온다. 써니의 새 출발과 정혜의 일상이 교차되는 롱테이크가 <러브 토크>의 마지막 장면이자, 국내에서의 유일한 촬영분이다. 써니와 정혜가 스쳐 지나가는 긴 시간 동안 보조출연자들의 동선이 적당히 어울려야 하는 터라 테이크가 거듭된다. 그 사이, 카메오로 등장한 김지수는 <여자, 정혜> 때와 겹치는 많은 스탭과 묵은 인사를 나누고, 또 다른 주연 박희순은 자기 촬영이 없는데도 묵묵히 현장 한쪽을 지킨다.

“엔딩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넣고 싶었다. 내면의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 반복된 일상의 과정이라는 코드를 던져주고 싶었다. <여자, 정혜> 때 이곳 신수동에 정든 것도 있고.”

이윤기 감독은 LA 촬영 중에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다시 설계했다. <러브 토크>는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마주하는 세 남녀, 써니(배종옥), 영신(박진희), 지석(박희순)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감성적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랑의 쓸쓸한 풍경이 그 교차점이다. “연기를 하면 NG를 낸다. 연기할 때 연기하는 걸 싫어해서 배우 생활을 오래 했지만 힘들었다. 무표정하지만 그 장면에는 내면의 느낌이 묻어나도록 해야 했다.” 늘 솔직하고 당당한 배종옥이 웃으며 진지하게 말한다. 하지만 택시에서 내린 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는 써니의 얼굴에서 그 어렵다는 표정이 간략히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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