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9월을 맞고 있다, 라고 쓰면 잘난 척하는 말로 들리려나. 그래도 사실이니 양해해주시길. 8월 마지막 주를 맞아 뒤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6년 전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돌아다닌 뒤로 처음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결심한 터라 조금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막상 피렌체의 어느 호텔방에서 하루 휴가를 이 글을 쓰는 데 소비하고 있는 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휴가지로 피렌체를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세계 미술품의 5분의 1이 이곳에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이건 셰익스피어랑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어떤 서구인의 오만과 비슷한 과장법인데 그래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싶은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르네상스 미술이 여기서 싹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실제로 가까이서 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일종의 미술품 같다. 두오모나 궁전이나 박물관처럼 유명한 건물뿐 아니라 좁은 골목길에 깔린 돌 하나하나에도 어딘가 장인의 손길이 담겨 있는 느낌이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면 건축에 조예를 갖춘 사람에겐 실로 대단한 구경거리일 것이다.
워낙 압도적인 미술품이 산재한 탓에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은 외국인 중엔 미술품을 보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도 그런 현기증을 호소한 사람 중 하나로 ‘스탕달 신드롬’이란 말이 그렇게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관광객도 똑같은 이유로 졸도할 것 같진 않다. 미술품보다 오히려 압도적인 건 그걸 보러온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다. 인파를 헤치며 토스카나의 태양을 쐬다보면 절로 다리의 힘이 풀린다. 우피치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2시간씩 줄울 서고나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앞에서 기절을 한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짜증이나 분노를 발견하기 힘든 건 휴가가 주는 여유 또는 휴가를 망치지 않으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평소에 즐길 수 없던 어떤 것을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수고스러울수록 만족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겐 피렌체라는 도시 전체가 그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값싸고 맛있는 키안티 와인이 그럴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날 여행자에겐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그 아쉬움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힘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