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이 진행 중인 한낮의 청담동 카페. 뜰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에서 창문을 고치던 아저씨가 유리창을 망치로 두드린다. 굉음과 함께 마당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유리 파편들. 촬영 중이던 여배우의 발치에 파편들이 떨어지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씩 웃으며 “이거 우리 영화 대박나려는 조짐이야”라고 말하는 간 큰 여배우. 김원희. 그가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하여 동기 장동건, 박주미와 함께 시작한 연기 생활도 벌써 14년이 흘렀다. <임꺽정> <꿈의 궁전> <은실이> <퀸>을 통해 활약한 드라마보다는 <헤이 헤이 헤이> <대한민국 1교시> <놀러와> 같은 오락프로그램으로 ‘예능의 퀸’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1972년생 여배우 김원희. 그래서인지 인터뷰 당일에도 카페 담벼락에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팬들이 몰려와 “언니 예뻐요”를 연발했다.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면 2000년에 방영된 <도둑의 딸> 이후 5년 만에 본격적인 연기자로 복귀한 그가 말하는 신작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그리고 MC, 배우, 라디오 DJ 등 전방위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
-1994년에 <키스 못하는 남자>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울랄라 씨스터즈>를 제외하면 카메오 출연이 대부분이다. <엑스트라> 정도가 예외일까.
=<엑스트라>도 많이 나오는 것처럼 광고됐지만 사실은 카메오다. 겨우 하루 촬영한 분량이다. 영화 안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였다. 사실 영화쪽에서는 좀 운이 없었다. 준비하던 영화가 두편 정도 엎어졌다. 그 영화들 스케줄을 기다리느라 드라마도 몇편이나 못하고 거절했다. 그 이후에는 영화와는 안 맞는 것 같아서 가급적 안 하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문의 위기…>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검사라는 직업 때문에 크게 웃음을 주기는 어려운 역이다. 그동안 연기를 너무 오래 쉬었고, 예능 이미지가 강한 상황에서 갑자기 정극에 가까운 역을 하면 좀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래서 쉬었다가 그냥 드라마를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워낙 강하게 권했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개그맨인 줄 아는 친구들이 많다는 거지. 내가 강호동이랑 같이 시작한 개그맨인 줄 안다. (웃음)
-TV에서는 드라마와 예능(오락) 모두 성공적이었다. 예능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가.
=우선 재밌다. 주위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가 잘되면 예능은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예능프로그램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다. MC로 진행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평생 활동한다면 예능프로그램 1∼2개는 꼭 병행하면서 일하고 싶다.
-예능이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신인 시절 드라마에 출연하면 예능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는 경우가 흔하다. 그때마다 PD들이 MC를 해보라고 권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는 매니저도 강하게 반대하고, 당시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았다. 왜 연기자가 예능프로그램에 나가서 그러냐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PD들은 그때도 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나 방송에서는 그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계속 권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좀 힘들었다. 예능프로그램 녹화하는 건 재밌는데, 드라마를 촬영하러 가면 선배님들이 “너 왜 예능 하냐”라며 혼내니까. 그래서 드라마 쉬면서 예능만 할 때는 연기자 분장실에는 일부러 안 가고 그랬다. (웃음) 지금은 전반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일찍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시작할 때 여자 MC가 워낙 없어서 운이 좋았다. 오죽하면 유재석은 요즘 내가 드라마나 영화 찍으면 “빨리 희극인으로 돌아와”라고 말한다. 드라마와 예능을 오가는 게 지금은 개인적으로도 익숙하고 편하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있다면.
=영화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영화만 고집한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 전체적인 인지도 같은 부분은 무시하고 오로지 영화를 몇편 했느냐만 기준을 삼는다. 그건 좀 말이 안 된다. 영화 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TV 시청자와 영화관객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활동 스타일인 방송에 비해서는 영화인들만의 끈끈한 관계는 부럽다. 예를 들어 인기랑 상관없이 영화하는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좋다. 하지만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는 면은 싫다. 이것은 중간에 새 영화를 하려다가 그만뒀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를 하는 분 중 일부만 그러시겠지만 그것 때문에 빈정 상했던 적이 있다. (웃음)
-<가문의 위기…>의 검사 진경이라는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영화사에서 나를 캐스팅한 이유는 아마도 웃겨달라는 요소가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판단은 내가 웃기는 쪽으로만 몰고가면 드라마의 흐름이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캐릭터를 좀 누르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촬영 중에도 웃겨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는데 억지로 웃기는 게 싫어서 논의도 많이 했다. 웃기는 것만 원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나를 조폭 형제 중 하나로 넣어주든지. (웃음) 사실 찍으면서 고민도 많았다. 다른 분들은 영화에 대한 전문가인데 내가 오랜만에 복귀하면서 괜히 내 생각만 주장하다가 고집은 고집대로 부리고 영화는 영화대로 안 되면 무슨 망신인가. 진숙과 진경이라는 1인2역인데 관객이 잠시 졸다가보면 ‘저렇게 촌스럽다가 나중에 검사 된 건가’ 오해할까 싶어서 두 역할을 구분해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촬영 중에 제일 힘들었던 일.
=영화 하면서 몸이 너무 아팠다. 내가 이날 이때까지 깡다구 하나로 버텼는데. (웃음) 결혼식이랑 촬영이 겹쳤던 일정 탓이 컸다. 결혼을 처음 하니까 결혼을 너무 쉽게 본 거다. 결혼이라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데, 남편도 원형탈모에 걸릴 정도로 고생했다. 주변에서 친한 언니가 웨딩플래너로 많이 도와줘서 잘 마무리되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결혼식 뒤에도 집문제와 촬영 때문에 거의 같이 살지 못했다. 초반에 부산 분량이 많아서 만날 집에 못 들어갔다. 남편과 영화 끝날 때까지 다섯번도 못 봤다. 게다가 대상포진(팔의 자국을 보여주며), 이게 아직 흔적이 남을 정도로 그때는 상태가 심각했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된 것도 있었고 3개월을 골골하며 찍었다.
-앞으로는 예전보다는 더 영화에 적극적으로 출연하게 될지 궁금하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작업의 품질이 높다. 몸은 힘들지만 여러 사람이 편집해서 볼 수 있고, 상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안정적이다. 연기에 미리 욕심을 안 부렸던 부분은 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새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에 출연하는데 <가문의 위기…> 덕택에 몸이 많이 풀렸다. 인생이 잘 안 풀리는 내레이터 역이다.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오랜만에 연기를 해서 <가문의 위기…>에는 좀 미안한 감이 있다. 아쉬움도 많이 남고. 장르를 굳이 넘나들겠다는 것도 오버지만 어느 것은 안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이번 영화가 잘되더라도 ‘나는 영화만 하겠다’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영화라는 매체가 영화만 고집하며 진지하게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작업인 것도 사실이고. 내가 좋은 작품에 출연해도 그 직후에 예능에서 웃고 떠들고 이러면 그런 부분은 좀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반대로 지금 내가 한 장르만 고집하며 신비주의를 표방해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신비주의를 하려면 진작부터 했어야지. (웃음)
-남편과 15년간 연애한 걸로 유명하다.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한 것과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자면.
=처음에는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났다. 2월 초반 아주 추운 날씨였고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리고는 꽉 채워 15년을 만났다. 일본에서 사진공부를 했고, 거기서 광고랑 패션사진 활동을 했다. 화보 촬영만 같이 했다. 내가 사진 찍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리고 사진이 진짜 안 어울린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주 불편했다. 그런데 남자친구라서 많이 편했다. 서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덕택에 지금은 사진 작업에 많이 익숙해졌다.
-최근 영화출연이 잦아진 김수미 선생님, 김해곤 작가와는 현장에서 재밌었을 것 같다.
=김수미 선생님과 나는 비슷한 면이 많다. 알고보면 둘 다 숫기가 없는 편이다. 나는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니까 사람들이 막연히 마당발이고 사교적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선생님도 나대는 거 싫어하고 평소에는 조용하시다. 물론 촬영이 시작되면 폭발력을 보여주시지만. 상대 악역을 맡은 김해곤 작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말 귀여우시다. 무조건 ‘***야 ***(욕설)’(흉내내며)로 시작한다. 한번도 작업을 같이 안 해서 그분 스타일을 나는 전혀 몰랐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도 않았고. 진짜 웃긴다. 연기보다 평소가 더 재밌다. 이 영화를 하면서 이분 덕분에 너무 즐거웠다.
-진숙이 등장하는 과거 장면은 <헤이 헤이 헤이>에서 신동엽과 연기하던 ‘웃자 웃자’ 코너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더라. 원래 한번 했던 톤의 연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대목도 충분히 더 오버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낮춰서 간 면이 있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웃음이라는 게 그 부분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마 인상적으로 보인 것 같다. 진숙이 나오는 과거 분량이 좀더 길었으면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촬영 분량이 넘쳐서 늘릴 수 없었다.
-대조적으로 법정장면의 연기는 매우 진지하다.
=법정신도 더 길었는데 많이 줄어든 것이다. 사투리 버전과 표준말 버전 두 가지가 있는데, 사투리 버전을 나는 처음에는 반대했다. 일단 두 가지 버전을 찍어보자고 해서 진행되었다. 솔직히 감동을 줘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사투리가 약간 섞인 버전이 선택되었다. 최종 결정은 감독님의 몫이니까.
-정용기 감독과 현장에서 의견 조율은 어떻게 했는지. 많이 다퉜을 것 같기도 하다.
=감독님이 보통이 아니다. 감독님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현장에 가면 연기학원에서 수업받는 줄 알았다. 감독님보다 잘하지 않으면 OK가 안 나니까. 나중에는 다른 배우들도 감독님한테 연기하지 말라고 말렸다. 웃기는 거든 뭐든 정말 연기를 잘한다. 우리가 오죽하면 “감독님은 얼굴만 받쳐줬으면 연기를 해도 몇년은 해먹었겠다”라고 했다. (웃음) 어디 갖다놔도 미움받을 일은 없는 타입이다.
-신동엽과 함께한 <헤이 헤이 헤이>, 유재석과 진행 중인 <놀러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본인의 진행 스타일은 어떠한가.
=유재석은 욕심이 많아서 굉장히 열심히 한다. 힘들어서 지쳐 쓰러지려고 하는데도 계속 한다. 재석이는 원래 변질이 안 되는 애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변질이 안 되는 애다. 굉장히 챙겨주고 싶은 친구다. 신동엽씨는 정말 편한 사람이다. 자기가 전부를 다할 수 있어도 남과 잘 나눠 먹는다. 호흡을 잘 맞춰주는 진행자다.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웃길 수도 있는데 조화를 생각하는 파트너다. 어떤 순간에도 과하지 않고 뭘 해도 안 미운 인간이지. 내가 실수해도 커버를 잘하는 노련미도 갖췄다. 지금도 아나운서를 제외하면 딱히 여자 MC가 많지 않다. 다년간 굳혀온 자리라서, 남자는 아주 많다. 개그맨 출신 남자 MC는 지속적으로 배출되었다. 그래서 나는 편안히 독식할 수 있었다. (웃음) 내 경우에는 MC인데도 시청자처럼 궁금해하고 묻는 편이라고들 한다. 그게 일장일단이 있다. 예를 들어 이혼한 게스트가 와도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걸 묻는 경우가 있다. 같은 연예인끼리 그걸 어떻게 물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 라디오 방송을 할 때 전인권 아저씨가 나오셨다. 내가 “경찰서 가보셨어요?”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분이 “저 별 두개예요” 그러는 거다.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는데 내가 다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분이 쿨하게 또 “폭력입니다”하고 답했다. 어떤 분들은 신선하다고 하고, 옆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의외의 것들을 풀어나가는 데는 적합하긴 한데 엉뚱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손현주 오빠. 자기 방식대로만 연기를 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 오빠는 톤을 딱 맞춰서 정말 잘한다. 자기가 모든 걸 어떻게 하려고 억지로 연기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만 한다. 그 오빠가 여자였다면 내가 엄청 따라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멋있는 배역으로 빛나지만, 그는 그저 원래 역할대로 정확히 한다. 아직은 수면 밑에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정말 대단한 배우가 될 것이다. 나도 드라마만 10년을 했는데, 언젠가는 진짜 제대로 미친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누가 봐도 정말 ‘또라이’ 아니냐고 되물을 만한 인물. 내 안에 약간 그런 일면이 있기도 하다. 정말로 센 악역을 한번 해서 다른 느낌의 연기를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있다. (기자에게) 그런데 세 페이지 안에 이게 다 들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