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을 다 못 깨면 볼 수 없는 줄거리. 마우스로 사진의 이곳저곳을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꼼짝도 않는 페이지. 일단 바라는 대로 해주기만 하면 멋진 스테이지가 열린다. 때로 얌체처럼 튕기고 때로 쇼걸처럼 현란한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 애교가 엿보이는 깔끔한 설은아씨가 이 홈페이지를 만든 웹 아티스트다. 홍익대 전철역 바로 앞 오피스텔에서 친구들과 ‘포스트비주얼’이라는 회사를 차려 작업을 하는 설은아씨는 이미 그녀의 홈페이지 설은아닷컴(www.seoleuna.com)으로 네티즌들과의 ‘인터랙션’에 익숙한 유명 웹 아티스트다.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재학중 ‘디지털미디어’라는 수업의 과제물로 만들었던 첫 번째 사이버전시 ‘Bi-Communication’으로 대한민국 홈페이지 디자인 공모전 특선에 입상하고,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대상까지 받았다. 데뷔가 곧 대박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 사이버전시 ‘GLANCE’는 플래시필름페스티벌 ‘모션그래픽’부문 최종심사까지 올랐고 로테르담영화제 온라인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모션그래픽과 인터랙션은 그녀의 웹아트를 이루는 몸과 마음이다. 그래픽에 움직임과 시간성을 도입해 플롯, 혹은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모션그래픽은 쉽게 말해 움직이는 이미지. 스틸사진이나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움직임을 창조하는 것을 지칭하는 웹디자인 용어다.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에서 전지현이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순간을 포착한 스틸사진은 댄스음악에 맞춰 마치 실제 춤을 추듯 모션그래픽으로 되살아난다. 모션그래픽이 설은아 ‘아트’의 몸이라면, 인터랙션은 흔들림 없는 그녀의 정신이다. “상호작용하는 힘이죠. 웹상에서의 인터랙션은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신개념의 인터랙션이에요. 전 감성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요.” 나를, 그리고 너를 느끼는 장으로서의 웹을 믿고 실천하기. 그 한 예로 설은아닷컴의 ‘40ers’라는 섹션에서 그녀는 40명의 참가자를 모아 그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40명의 사람들로부터 동영상 크리스마스 캐럴을 받기도 했다.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가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를 ‘하도록’ 만드는 것도 이런 인터랙션의 일환. 벽돌을 깨고, 두더지잡기 방망이를 날리며 봐야 하는 ‘10단계 줄거리’는 그래서 그녀가 가장 자신있는 부분이다.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는 설은아씨가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홈페이지이다. 각종 게시판의 갖가지 글들을 죄다 읽고 배우들에게서 목소리를 따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쳐 만들었다. “영화홈페이지는 굉장히 소스가 풍부한 분야예요. 이미 스토리까지 있으니까요. 기존 영화홈페이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전 유쾌한 분위기를 모션그래픽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이 정도면 훌륭한 예고편 아닌가요.” 담백한 자랑에 공감이 된다. 함께 있는 설은아씨의 친동생 설은영씨와 학원후배였던 배재철씨는 그녀와 작업을 함께한 이들. 설은아씨가 “도자기 만들 줄 알아?” 하고 농담을 건네는 배재철씨는 단국대 도예학과 4학년 학생으로, <엽기적인 그녀> 홈페이지 중 ‘에피소드’ 부분을 맡았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4학년인 동생 은영씨는 포스트비주얼사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고.설은아씨의 다음 프로젝트는 7월29일부터 3일간 코엑스에서 열리는 ‘플래시 컨퍼런스 2001’이다. 설은아씨는 여기서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플래시에 대해 강의를 한다.
글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