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아내와 남편은 불륜을 저질렀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낯선 고장 삼척으로 달려와 혼수상태인 아내와 남편을 볼 때까지도. 아마 그들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낯선 곳에서, 절대로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자기를 속인 배우자를 간호하면서, 그들의 변명조차 듣지 못하면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수와 서영은, 일상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혹독한 고통의 순간에 만난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라는 인수의 말처럼,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만약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먼길을 찾아온 후배에게, 취한 인수는 그냥 가라고 말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낯선 곳에 홀로 내던져진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사랑한 것일까? 인수와 서영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잠잘 때, 라는 것 정도가 공통점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정말로 잠들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깨어서 자신들의 배우자를 간호해야 하고, 비현실적인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근심해야만 한다.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그들의 만남은 데이트가 아니고,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지만, 그 누구도 감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럼 불륜일까? <외출>은 사랑과 불륜의 차이나, 관계를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낯선 곳에서 만났고, 서로에게 기댄 것이다.
<외출>이라는 제목은, 인수와 서영의 처지를 말해준다. 또한 허진호 감독의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그려낸 세계에서의 외출을 말한다. 그 남자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으로 지속시키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는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보내야만 하는 조명감독이다. 그들은 영원을 믿었지만, 인수는 그럴 수가 없다. 이미 모든 것은 깨져버렸고, 돌아오지 않는다. 그 남자들은 일상에서 만난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천천히 다가간다. 시원한 물 한잔이나 라면 같은 일상의 소품들이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 남자들의 가족은, 영화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허진호의 영화는 사랑을 말하는 동시에, 그 모두를 포용하는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외출>에는 일상이 없다. 인수와 서영이 처음 섹스를 할 때조차, 만남의 과정은 툭툭 끊어지며 어느 순간 호텔의 침대 위에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손을, 몸을, 화면 가득히 채운다. 그것을 단지 배용준의 얼굴과 몸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인수와 서영은 지금, 비현실의 극한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아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서로의 얼굴, 손으로 만져지는 몸 이외에는 없다. 그것만이 지금 존재하는 현실이다.
허진호의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외출>은 낯설게 비칠 것이다. 허진호의 영화는 자잘한 일상들, 그들의 공기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물이 스며들듯이, 어느새 색이 들어 있곤 했다. 하지만 <외출>은 그저 던져진다. 인수와 서영이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관객 역시 흩어진 감정들과 단절된 상황들을 보아야만 한다. 그게 낯설게 보인다. 하지만 <외출>은 이탈된 순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은 단지 그들의 미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연인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갖는 의문 같은 게 아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서 그들의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누가 깨어나고, 누가 죽는가에 의해서.
<외출>은 전작들과는 다른 ‘외출’이지만, 허진호의 영화답게 여전히 섬세하고 치밀하다. 막막한 상태에 놓인 남녀의 감정을 미려하게 담아낸다. 축적되고 쌓이는 것은 없지만, 끊임없이 회의하며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기대고 싶은 그들의 심정이 배어난다. 가장 많이, 그들의 얼굴에서. <외출>은 그들의 얼굴을 통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일본의 욘사마 팬들도 원하는 일이겠지만, <외출>의 극단적인 소재가 클로즈업을 원한다. 그들의 일상이 아니라, 지금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외출>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표정에서 보인다. 그들의 몸짓에서, 그들의 눈물에서. <외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손예진이다. 심은하, 이영애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연기를 손예진은 보여준다. 그 존재만으로도 순간을 사로잡는 배우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외출>을 허진호의 최고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외출>이 허진호의 영화세계에서 어긋난 작품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외출>은 허진호의 세 번째 영화이고, 아직 어디로 뻗어나갈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고적하면서도 푸근한 정서가, <외출>의 막막함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허진호는 남자의 관점에서 사랑을 말하는, 남자의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왔다. <외출>에서는 오히려 서영이 더욱 풍부하고 섬세한 내면과 감성을 전해준다. <외출>은 누구나의 인생에나 존재하는 ‘외출’의 극단적인 미혹을 보여주는 영화다. 낯설고 고통스럽지만,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이탈과 내쳐짐의 정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