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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사진전
김수경 2005-09-05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진전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환경영화제와 함께 열리고 있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사진전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는 엄밀히 말하면, 시와 사진전이다. 사진들은 별도의 제목없이 키아로스타미가 쓴 짧은 시와 함께 전시되는 형태가 많다.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그의 시는 사진처럼 간결하고 상징적이다. 1978년부터 15년 동안 키아로스타미가 찍은 흑백사진 84점을 모은 이번 전시회는 그의 문학과 회화에 관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32편은 무제, 52편은 ‘길’의 항목에 속하는 사진들이다.

키아로스타미의 흑백사진에서 인물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포커스에는 배경이 아닌 주체적인 자연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근대철학이 이분했던 인간과 대립하는 대상이 아닌 인간처럼 그려지는 자연이다. 타자화되지 않고 인간과 경계없이 하나로 그려지는 자연을 키아로스타미는 카메라를 통해 세밀하게 그려낸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나를 잊어주기를. 그러나 나도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라는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이러한 자신의 시선을 표현한다. 신작 <길>의 초반부에서 자신이 찍은 스틸 사진이 프레임을 메우는 주된 피사체로 사용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촬영자인 키아로스타미의 모습이 프레임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이처럼 최근의 그는 카메라의 안과 밖을 아무런 제약없이 넘나든다. 한편 설원을 배경으로 한 그의 사진들은 18세기 중엽 유행했던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를 떠올리게 한다. 입체파 화가들도 열광했던 우키요에의 느낌이 그의 사진에서 묻어나는 것은 3차원의 공간감을 도식적으로 화면이나 캔버스에 옮겨 표현하기를 거부하려는 시도가 공감대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진들은 영화로 변환되지만 속성은 자신을 낳은 예술인 회화로 회귀하는 인상을 준다. 8월26일 시작된 이번 사진전은 9월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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