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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가족 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에게 던지는 질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억압이 슬프다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소시민들의 땀과 피, 젊은이들의 성실함, 말하자면 드라마 속 인물들이 살아내는 ‘바르고 착한 삶’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네들의 ‘착한 심성’만 부각되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인데, 그들 내면에는 ‘착한 심성’ 못지 않게 ‘못된 이기심’도 분명히 자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정상' 가족을 원하는 강박관념들

먼저 한정우(김동완 역)네 가족을 보자. 오랜 불황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다 다시 일어서는 두 형제의 이야기가 자못 흐뭇하게 그려지는데, 그 과정 내내 또 다른 형제 한 명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부자’인 그는, 다른 가난한 형제들로부터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부자인 그의 잘못으로 묘사되고는 있었으나, 그 심정을 헤아려보려는 ‘형제애’적인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헤아림 끝에 내린 결론이란 것이 ‘앞으로 저 애한테는 연락하지 말고 우리끼리 잘 살자’ 정도였으니 도리어 그 왕따 형제에게 동정심이 갈 지경이다.

또한 남동생인 정우를 아들로 키워왔다는 설정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버지’를 ‘형’으로 고쳐 불러야 하는 정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얼마나 원망스러운 일인가.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처럼, 왜 굳이 아들로 키웠어야 했냐는 의문을 떨치기가 힘들다. ‘우리 집안의 막내’로 키웠어도 충분히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핸디캡으로 인식한 나머지, 그것을 감추려고 애쓰고, 또한 그 대가로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된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가족의 ‘형식’을 유지해야 그 ‘내용’도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상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 믿음은 가히 강박관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정상’에 대한 강박관념.

‘정상’에 대한 강박관념은 박여진(오연수 역)네 가족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의 모습이다. 잘 꾸며진 이층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딸까지.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멋대로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곁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어머니가 있다. 딸은 아버지의 반대에 못 이겨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로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결혼하지 않고 버텨온(?) 인물.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큰 결심을 한다. 딸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인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잘 이해하고 있는 딸이 그녀의 이혼결심을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두 분이 이혼하시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저를 봐서라도 돌아와주세요. 저를 제발 불효자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돌아오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 결국 어머니는 여전히 무지막지한 남편 곁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혼을 만류한 것이 더 큰 불효가 아닐는지 짚어보는 나야말로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식과 남편, 시어머니의 부담을 벗고, 이제야말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어머니를 부득부득 ‘가족’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태도도 ‘효녀’의 그것이라 속 편하게 단정지을 수도 없지 않을까.

가족에게 개인의 자유를 앗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드라마가 시작될 무렵 KBS 건물 앞을 지나며 보았던 커다란 현수막을 기억한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영 딴판인, 너무나 밝은 표정의 남녀. 조금의 그늘도, 슬픔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이 둘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환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밝고 명랑한 현재가 곧 가족에 의해 저지당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편히 쉬고 싶은 중년 여성의 발목을 거는 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억압들. 한쪽에서는 아버지를 형이라 속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머니의 이혼을 반대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결혼을 반대하는 이 모든 슬픈 일들이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가족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억압은 어디까지인지, 가족에게 개인의 자유를 앗을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있는지, 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의문은 ‘가족 드라마’에 던지기에는 더욱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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