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충격을 주었던 조지 A. 로메로는 그 삼부작 이후 20년 동안 좀비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사이 영화 속의 좀비들은 빠르고 영리하고 코믹한 존재로 진화했고, 더이상 자신의 조상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랜드 오브 데드>는 노인네의 허무한 발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느릿느릿 걷는 게 전부인 저능아 좀비. 로메로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오래전 “인간이 가진 능력의 5%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던 클래식한 좀비들을 거느리고, ‘좀비 삼부작’의 리메이크가 아닌, 지금 이순간의 영화를 만들었다.
되살아난 시체들이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하고 몇년이 지난 언젠가. 라일리(사이먼 베이커)는 좀비들이 점령한 마을에서 식량과 물품을 가져오는 보급부대의 군인이다. 그는 좀비들에게 이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생기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북쪽지역으로 떠나려는 라일리. 그러나 도시를 지배하는 재벌 코프만(데니스 호퍼)은 반란을 일으킨 동료 군인 촐로(존 레기자모)를 진압하는 데 라일리를 이용하려하고, 그날 밤 흑인 좀비의 지휘 아래 좀비들 또한 도시로 진입한다.
<랜드 오브 데드>는 로메로의 전작과 떼어놓을 수 없는 영화다. 참혹한 몽타주 몇장만으로 전사(前史)를 대신하는 건 전작이 있어 가능한 일이고, 촐로와 그 부하들이 좀비를 사냥하는 장면은 <시체들의 새벽>의 사냥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도 가진 자들만의 안전한 세계, 지능을 가진 좀비는 <시체들의 낮>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야기,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로메로는 가장 예민하던 시절의 영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신랄하고 분방한 조롱을 이 영화에 담았다. 미사일까지 장착한 장갑트럭을 타고 무력한 좀비를 학살하는 보급부대원이나 좀비의 존재 자체를 고려하고 싶어하지 않는 상류계급은 인종과 경제, 이중의 벽을 둘러친 미국의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랜드 오브 데드>는 가볍고 통쾌한 오락영화이기도 하다. 공동묘지처럼 스산한 마을과 살아 있을 때처럼 탬버린을 두드리는 좀비는 음울한 그림자를 던지지만, 학살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부대원 중 한명이 말하듯 비디오게임과 비슷한 쾌감을 주기 시작한다. 울부짖는 좀비를 보면 조금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반 정도는 농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