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주관객층으로 잡고 어린이를 다룬, 어른이 만든 ‘어린이’영화에서 소박한 현실성을 찾으려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에 구비된 색색의 아이스크림처럼, 한편의 ‘어린이’영화 속에는 가족간의 사랑, 우정, 꿈, 희망, 모험이 갖가지 빛을 발하며 어린이들의 구미를 당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정의로운 아이들과 타락한 어른의 대립구도를 통해 아이들의 주눅 든 감수성에 일시적 충만감을 준다면, 현실을 완벽히 차단하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어린이영화가 된다.
<에밀과 탐정들>은 전세계적으로 번역되어 수많은 어린이 독자를 확보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심부름을 하려다 도둑한테 돈을 빼앗긴 소년이 친구들과 힘을 합쳐 도둑을 잡는다는 원작의 이야기는 엉성하고 단순해졌지만 한층 화려해진 스케일의 영화가 되어 부활한다. 갑부의 아들부터 가난한 집시까지 다양한 계층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에밀의 친구들. 아이들은 그 극명한 생활수준의 차이에 부딪히거나 박탈감에 휩싸이는 대신, 각자에게 익숙해진 생활양식을 십분 활용하여 악당을 잡기 위해 협력한다. 예컨대, 거리의 아이들은 노숙을 하며 악당을 기다리고, 부잣집 아이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이용해 악당을 추적하며, 집시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는 선의의 거짓말로 주인공을 돕는 식이다. 이 아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오직 악당 어른을 처치하는 것뿐이다. <구니스>부터 <나홀로 집에>에 이르는 ‘어린이’영화가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아이들 내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탐욕스러운 어른으로 상징되는 외부의 악에 대항하는 데 무게를 둔다. 그래서 영화 속 아이들 각각의 캐릭터는 상당히 개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몸짓과 말투는 악당, 영웅, 정의라는 범주 속에 갇혀 곧 지루해져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때때로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아이들의 방식이 어른 세계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덧붙여, 이 영화의 명장면. 영화의 후반부, 악당 하나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개미떼처럼 모여든 아이들 무리는 걸리버를 무너뜨린 소인국 사람들처럼 통쾌하지만 매우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