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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예쁜 게 좋아

<씨네21> 지면혁신호 표지

언제 가장 무섭고 긴장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처음 가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맡길 때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단골 미용실을 정한 뒤로는 자리에 앉으면 알아서 깎아주는 상황이 됐지만 단골 미용실을 찾기까지 꽤 많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라는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이 “음, 좀 짧게” 아니면 “잘” 혹은 “예쁘게” 같은 도합 4∼5가지도 안 되는 말밖에 없으니 가위를 든 자에게 목숨이라도 맡긴 기분이 든다. 그럴 땐 그저 속으로 ‘인샬라’(신의 뜻대로)라고 되뇌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런 일을 겪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히 설명하는 여자들(혹은 남자들)을 볼 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헤어스타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옷이나 액세서리를 고를 때 반짝반짝 빛나는 여인들의 눈은 수십 가지 화장품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그들의 두뇌처럼 영민하고 치밀하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런 노력을 할일없는 자들의 소일거리라고 무시하지만 과연 그렇게 말하는 사내 가운데 몇명이나 진정 위대한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지는 의심스럽다. 아름다움을 소비하고 즐기려는 자연스런 욕구를 ‘계집애나 하는 짓’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곳은 과연 얼마나 웅혼한 남성의 기상이 살아 있는 도시가 되었던가? 나는 예쁜 것에 집착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문화가 남녀의 성차에 대해, 내용과 형식에 대해, 목적과 수단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문화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내용만 좋으면 되지 형식이 뭐 크게 문제가 되겠느냐, 목적이 정당한데 수단이 좀 틀렸다고 시비를 걸면 되겠느냐, 대의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지 않으냐는 식의 논리. 가정을 예로 들면 남편이 돈 벌어오는 일은 위대하고 아내가 살림하는 일은 하찮다는 식의 논리. 개발독재 시절에나 어울리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씨네21>의 이번 지면혁신은 그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이야기가 거창해졌지만 <씨네21>의 지난 10년에도 내용만 좋다면 형식은 좀 뒤떨어져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시절이었고, 신문사가 모태가 된 잡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창간 10주년에 보내온 이충걸 <GQ> 편집장의 조언처럼 내용의 진보성이 형식의 진보성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예뻐지고 싶다.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아 <씨네21>의 또 다른 10년을 약속하고 싶다. 물론 예뻐지려면 얼마간 투자가 필요하다(솔직히 돈 안 들이고 예뻐지는 방법은 할 만큼 해봤다는 심정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종이를 검토했고 비주얼과 비용이 만나는 최적의 지점을 찾으려 했다.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디자인을 점검하고 사진과 글이 만나는 최적의 상태를 찾으려 했다. 이번호에 완성된 그 결과를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편으론 기대가 되고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제본방식이나 기사순서, 디자인과 종이 등 형식이 바꾼 부분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빠를 것이고 이번 개편부터 생긴 코너를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먼저, ‘이창’ 이 부활한다. 소설가 김영하와 <안녕, 프란체스카>의 작가 신정구가 번갈아 연재할 이 칼럼은 유쾌한 상상력으로 빚은 글 읽기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두 번째, ‘김혜리가 만난 사람’이 신설된다. 격주로 연재될 이 코너는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는 인터뷰란 어떤 것인지, 그 모범이 되리라 자신한다. 또 하나 새로 생긴 코너는 ‘김봉석의 B딱하게 보기’다. 평론가 김봉석은 당신이 스쳐지났던 대중문화의 잡동사니 속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해 알려줄 것이다. 이 밖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칼럼의 필진도 바뀐다. 진중권, 이진경, 유재현, 세분이 번갈아 쓰던 이 칼럼은 앞으로 진중권, 오귀환, 최보은, 세 사람이 맡게 된다.

바뀐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빨리 펼쳐보고 하나하나 바뀐 것을 찾아보시길. 끝으로 한마디 하자면, “여러분, 나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