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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1]
글·사진 이성욱(<팝툰> 편집장) 2005-08-24

대만 뉴웨이브의 씨를 뿌린 거장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

“모든 중심은 주제에 있다. 주제에 따라 스타일이 나온다”

<청매죽마>

<독립시대>

8월24일부터 9월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대만 뉴웨이브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등 세 감독의 주요작 19편을 상영한다. 아무래도 눈이 번쩍 뜨이는 건 에드워드 양이다. <청매죽마>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독립시대> <하나 그리고 둘> 등 20년이 넘는 영화이력에서 7편에 불과한 그의 장편 중 5편을 상영한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를 한곳에서 편안히 앉아 차분히 볼 수 있는 건 희귀한 기회다. 무엇보다 그는 대만 뉴웨이브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다. 시애틀에서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월급쟁이로 지내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시작한 때가 30살. 한때 USC에서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너무 다르다며 중도에 포기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아귀레…>를 만난 뒤 불쑥 타이베이로 돌아와 자기 집을 사랑방처럼 활짝 열어놓고 허우샤오시엔을 비롯한 지인들을 모아 ‘쑥덕공론’하더니 마침내 일을 내고 말았다. 에드워드 양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건 그의 작품들과 손쉽게 만나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난감한 일이다. 그저 멀찍이서 지레짐작해본 에드워드 양은 그의 영화들처럼 쓸쓸한 기운을 흘린다. 2000년 <하나 그리고 둘>이 칸에서 감독상을 받긴 했으나 새로운 피를 나눠준 허우샤오시엔보다 아무래도 각광을 덜 받아왔다. ‘조국’ 대만은 대륙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와 그의 영화를 불온시하고 평가절하해왔다(<하나 그리고 둘> 이전까지의 작품들을 보면 대만 미디어의 경직성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말 그는 쓸쓸한 거장일까. 페스티벌 기간 중 허우샤오시엔과 차이밍량은 한국 관객과 진한 대화를 나눌 예정이지만 에드워드 양은 서울에 오지 않는다. 하여 타이베이에서 3시간의 인터뷰 약속을 받아쥐고 어떤 기대감에 떨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는 3시간 내내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와 겸손함으로 나직나직 이야기를 풀어갔다. 통역의 번거로움과 기자의 짧은 안목이라는 거름종이를 거쳐야 하는 터라 인터뷰가 그의 풍성한 영화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P.S 그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같은 것에 틈을 내줄 수 없을 만큼 늘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산다고, 어떨 때 외롭고 어떻게 자신을 위로하냐고 묻는 질문에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그리고 둘>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자신이 처한 시간과 장소는 그 사람의 사고와 감성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다. 11년간의 미국 체류, 그리고 타이베이와 홍콩, 도쿄와 LA를 오가는 삶이 당신 영화에 새겨넣고 있는 것, 혹은 당신 사고에 미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에 대한 이해는 듣는 것보다 체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종류의 영화와 만화를 봤기 때문에 대만 밖의 세계에 호기심이 많았다. 외부세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성장한 뒤 내 능력으로 외국을 나가게 됐을 때 많은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느꼈다. 영화를 찍을 때 수백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요즘 젊은이들은 나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세상 물정을 다 알 수 있으니까. 이는 인류사회의 진화에 필연적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 그리고 둘>의 제작비는 일본의 벤처캐피털을 통해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이 대만에서는 상영조차 못했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흥행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차기작인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구하는 게 좀 쉬워졌는가. 그리고 제작비를 구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나.

=제작비는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건데 영화에 상업적 가치가 있으면 투자자는 자발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내가 특별히 투자자를 찾아나선 경우는 없다.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은 상업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대만 자본을 중심으로 외국 자본이 모인 상태다. 어느 나라든 영화는 하나의 산업이지만 대만은 그렇게 부흥되고 있지는 못하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일본 투자자가 먼저 찾아와 제작된 경우다. 영화는 한 국가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이어서 국경을 넘어서 투자자들이 찾아오는 추세다. 영화를 시작하기 20여년 전 컴퓨터업에 종사했는데 당시 PC산업이 이렇게 성장할지 아무도 몰랐다. 투자도 잘 안 됐고. 영화나 컴퓨터나 당시에 이렇게 세계적으로 나아갈지 누가 알았겠나. 확실한 건 내 작품이 상업적인 가치가 있기만 하면 투자자는 몰린다는 거다.

-<The Wind>라는 무협애니메이션은 올해 끝나는 게 아니었나? 도대체 어떤 작품인가. 에드워드 양이 만드는 애니메이션, 그것도 무협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애니메이션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The Wind>는 절반 정도 완성됐는데 아직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 중요한 건 작품의 질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무협은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것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김용 것과는 다르다.

-내용을 좀 말해달라.

=긴장되고 흥미진진하며 로맨스도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재밌다. (웃음) 작품에 관계된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사진이나 내용을 임의로 공개할 수 없다.

치정사건을 통해 불행을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종> 촬영현장

-<하나 그리고 둘>에서 NJ가 진정 소통하는 상대는 아내도, 옛 애인도, 딸도, 직장 동료도 아닌 일본인 사업가와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다. 그게 가능한 건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신뢰를 강하게 내보이되 경박하게 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과 관련해 의미심장해 보인다.

=특별히 특정인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부각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간에 똑같은 생각을 찾기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간단한 문제는 모두의 공통된 생각을 찾기가 쉬우나 복잡한 사안에선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를 것이다. 사람들마다 사물을 직면하는 경험이 다르게 마련이니까. 중국의 속담 중에 ‘연분’이란 말이 있는데, 영화에서 NJ가 일본 남자와 의사소통이 되는 건 그런 연분 때문이지 특별한 이유로 설정한 건 아니다.

-그래도 하필 외국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눈에 띈다. <마종>에서도 대만 소년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건 프랑스 소녀이며 마침내 연애에 성공한다.

=우연의 일치인 것 같다.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는 영화에서 오히려 더 부절적하고 재미가 없지 않을까.

-<청매죽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하나 그리고 둘>에서 공통적으로 소년의 치정살인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을 찍을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치정살인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다. 사실, 치정장면은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기 쉬운 것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더 찍기 어렵다. 중요한 건 치정살인이 굉장히 불행한 소재인데 이것으로 이야기를 좀더 정교하고 풍부하게 연결한다는 것이다. 치정은 인간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소재다. 내 영화는 한 사람의 생애를 보여주는 데 치정은 그 인생의 한 부분이다. 예컨대 정신병자가 살인을 한다면 놀랍지 않으나 모범생으로 알려진 학생이 교사를 죽였다면 그 동기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 그리고 <고령가…>의 경우는 내 친구에게 일어났던 실화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알려졌던 친구였다. 내 세대에 일어났던 놀라운 사건을 관객에게 적나라하게 전해주고 싶었다.

-끝내 치정살인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은 절망을 말하는 게 아닌가.

=절망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다. 이런 불행으로 해서 누군가가 자기 인생을 개척하고 추구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거다.

-<청매죽마>에서 젊은 허우샤오시엔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에 한국 관객이 흥미롭게 생각할 것 같다. 어떻게 주연으로 캐스팅하게 됐는지.

=그 영화를 구상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연기자가 직업배우가 아니어야 한다는 거였다. 당시 나를 비롯한 영화계의 친구들이 격려하고 권장해야 할 일이 배우의 고액의 몸값으로 인해 영화가 좌지우지되는 건 그 영화에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청매죽마>에는 허우샤오시엔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였던 친구도 중요 배역으로 출연했고 나 역시 그들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과 영화를 찍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허우샤오시엔은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

-배우와 배우의 연기에 관해 아주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영화에 적용한 대표적인 감독으로 로베르 브레송을 들 수 있을 듯하다. 그는 “배우는 없다. 배역은 없다. 미장센은 없다. 삶 속에서 포착된 모델의 사용만이 있을 뿐이다”거나 “특히 중요한 것은 그들(배우) 내면에 누가 있는지 그들 스스로가 미리 예단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이를 막론하고 비직업 배우를 훈련시켜 영화에 등장시키는 당신의 배우론은 어떤 것인가.

=당시 대만에선 연기자들이 발전할 상황이 아니었다. 홍콩으로 가면 모를까. 중요한 건 감독 자신이 영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영화의 효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연기다. 이때 배우마다 연기하는 방식이 다르니 호흡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나는 배우의 결점은 되도록 감추고 장점을 십분 발휘해주려고 한다. 이건 감독의 의무이기도 하다. 감독만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그래야 최대한의 극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브레송의 배우론과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당시 대만의 현실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실질적으로 맞는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배우들에게 원하는 걸 어떻게 끌어낸다는 것인가.

=내가 원하는 연기는 이런 것이니 이런 표정을 지어달라고 절대로 요구하지 않는다. 우선 친구가 된다. 그래서 원활히 의사소통을 나누고 내가 찍고자 하는 영화를 이해하면 내가 필요로 하는 연기가 나온다. 그때 나오는 연기는 무조건 훌륭하다. 화를 내는 연기는 배우마다 특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이런 표정으로 화를 내라고 일일이 지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 그리고 둘>에서 아주 진지했던 NJ 역의 배우가 먼저 만들어진 <마종>에선 아주 코믹한 킬러로 나온다. 정반대에 가까운데 그 배우의 본래 모습은 어느 쪽에 가깝고 어느 쪽을 활용한 것인가.

=그는 다른 무엇보다 감독과의 호흡을 중요시하고 또 모든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나와 아주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가족은 사회와 시대, 인생의 축소판이다

<해탄적일천> 촬영현장

<독립시대> 촬영현장

-당신 작품들에서 연애는 보통 배반과 실망으로 귀결된다. 그건 <하나 그리고 둘>의 제목이 재즈적인 삶을 의미한다는 것처럼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려는 건가. 당신에게 연애가 그랬는가.

=절대로 그렇진 않다. 치정살인의 소재를 자주 쓴 이유처럼 영화의 스토리라인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통속적인 사랑, 그러니까 희생, 봉사 등으로 표현하면 내가 만들려는 영화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 연애가 그런 건 아니다. 초기작에서 가난한 자를 많이 다뤘다고 나를 가난한 사람만 다루는 감독으로 설정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연애방식이든, 역사적 비극이든, 컴퓨터와 인터넷 등 삶과 일의 트렌드든 시대의 얼굴을 가족사에 투영하는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건 인생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가족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가족의 다양한 구성원은 연령층이 다 다르고 거기에 맞는 시대와 배경이 있다. 그것이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침 들어갔을 뿐이다. 특히 <하나 그리고 둘>의 주제가 인생이기에 가족사가 필히 들어가야 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신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아버지는 무기력하거나 부재한다. 반면 어머니는 자괴감에 빠져 있거나 히스테리컬하다. 반면 젊은 여성캐릭터들은 늘 복합성을 띠고 독립적이다. 왜 이런 유형이 그려질까.

=아버지가 모두 무기력한 건 아니다. 다만 주제에 맞게끔 아버지의 캐릭터를 설정했을 따름이다. <해탄적일천>의 경우는 아버지가 너무 폭압적이어서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마종>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젊은 영국 남자가 “10년 뒤엔 여기가(타이베이) 세계의 중심이 될거야. 서양문명의 미래가 여기에 있어. 재밌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야. 19세기에 제국주의가 영화를 누렸어. 21세기도 그럴 거야.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야”라고 자신의 사랑을 구하러 온 프랑스 소녀에게 말한다. 이 말 직후에 소녀는 뭔가를 느끼고 자기를 사랑하는 대만 소년에게 돌아가버린다. 의미심장한 대사로 받아들여진다.

=10년 전 상황인데 당시에는 유럽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대만, 한국 등 아시아의 4마리 작은 용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들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이 대만의 경우 사실이기도 했다.

-당시의 비판의식이 <독립시대>와 <마종>에 공통적이었던 건가.

=같은 문맥으로 봐도 된다. 촬영 당시 주변의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찍은 영화들이다.

-그런데 두 작품에서 당신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미디를 적극적으로 썼다. 이후 만든 <하나 그리고 둘>에서 유머가 살아 있기도 한데, 초기작 <청매죽마>와 <공포분자>의 음울한 정조나 미니멀한 스타일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어떤 계기가 작용한 것인지.

=모든 중심은 주제에 있다. 작품마다 주제의 주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주제에 맞는 스타일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제를 좀더 뚜렷이 표현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영화의 진실된 내용이다. 두 작품 모두 코믹한 스타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공포분자>는 음울한 분위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아주 달라보이는 모양이 됐다. 감독은 주제에 따라 표현기법을 탄력있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 회색적인 영화를 찍었다고 계속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겐 앞으로 찍을 작품들이 많고, 따라서 더 많은 변화들이 보여질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한정된 시간만큼 관객에게 보여줄 것도 한정돼 있다. 그러니 내 스타일만 고집하는 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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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류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