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 낙원이지, 늘 태양이 가득한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는 은퇴한 보석도둑 맥스(피어스 브로스넌)에게 감옥과 같다. 맥스와 롤라(셀마 헤이엑)는 ‘내 인생의 한탕’에 성공한 뒤 은퇴했다. FBI 요원인 스탠(우디 해럴슨)을 보기 좋게 엿먹이며 아기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훔친 두 사람은 캐리비언해로 은퇴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롤라는 취미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보려고 애쓰지만, 맥스는 얼마 안 가 무료함을 느끼고 뜨내기 여행객의 지갑을 슬쩍 하는 것으로 심심풀이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탠이 그들 앞에 나타난다. 캐리비언에 정박할 크루즈에 맥스와 롤라가 두 개를 훔쳤던 나폴레옹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다이아몬드가 전시된다면서, 스탠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감시한다.
어쩌면 ‘낙원판 <오션스 일레븐>’이나 ‘낭만적인 <이탈리안 잡>’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실력이 뛰어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도둑들과 그들을 둘러싼 악당(혹은 추적자)의 팽팽한 신경전, 반전을 거듭하는 지적인 두뇌게임이 꽉 짜여 있었다면. 배우들은 각자 충분히 매력적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에서처럼 돈보다 스릴이 중요한 대도를 연기하고, 셀마 헤이엑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수시로 서비스 컷을 제공한다. 사랑에 굶주린 프리다의 잔재가 남아 있는 매력적인 여인. 하지만 <오션스 일레븐>의 돈 치들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이었음에도 기묘하게 존재감이 없다.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스탠의 오락가락하는 인간성은 극적 반전이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실소를 자아낸다. <28일후…>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은 세레나를 연기한 나오미 해리스가 연기한 캐리비언의 여경찰 소피 역시 존재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감독 브렛 래트너는 <러시아워>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액션영화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마술의 눈속임과 같은 볼거리 너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에는 아직 서투르다는 것을 <애프터 썬셋>으로 증명했다. 낙원의 석양은 아름답지만, 어린 왕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 광경만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순 없다. 영화는 풍경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