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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가장’ 신파물의 계보, <초승달과 밤배>
김수경 2005-08-23

한대수의 노래 <옥이의 슬픔>에서 옥이는 “햇빛에 타고 있는 팔월 오후에 권태에 못 이겨” 폼나게 가출했다. 한편 <초승달과 밤배>의 옥이는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니 떠밀려난다. 옥이(한예린)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오라비 난나(이요섭)의 무관심으로 약장수의 트럭에 오르고, 이모할머니 집으로 더부살이를 떠나고, 시립아동보호소에 내팽개쳐진다. 슬픈 얼굴로 내몰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옥이와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은 김수용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원세의 <엄마없는 하늘아래>로 연결되는 한국영화 ‘소년소녀 가장’ 신파물의 계보를 잇는다.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강부자)와 단둘이 사는 난나. 갑자기 나타난 젖먹이 여동생 옥이 때문에 난나는 졸지에 보모로 전락한다. 할머니가 일하러 가는 동안 옥이를 돌봐야 하는 난나는 그녀를 버려두고 놀러다니기 일쑤다. 게다가 성장하며 영양실조로 등이 굽어가는 옥이는 난나에게는 ‘쪽팔림’ 그 자체다. 난나의 심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오빠를 따르는 옥이. 할머니가 일하던 어시장에서 허리를 다치며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로 변해간다. 고향을 떠난 그들에게 고난은 더해가고, 설상가상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운명이 다가온다.

10억원의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초승달과 밤배>는 어시장, 학교, 읍내 등의 로케이션에서 안정감 있는 정경을 보여준다. 밑바닥을 살아가는 70년대 소시민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하는 철거반원, 미싱사 에피소드 등도 적절히 배치되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축을 이루는 강부자와 기주봉의 무게있는 연기도 영화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옥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 한예린은 많지 않은 대사와 수동적인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고 정채봉의 원작소설과는 달리 사건들을 설명하고 나열하기에 급급한 스토리라인이나 ‘굽은 등에 날개가 숨겨져 있다’는 동화적 모티브의 과도한 반복은 영화를 지나치게 교훈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부담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옥이가 전해준 찔레꽃 도시락이나 난나가 옥이를 업고 걸어가는 밤길에서 나타나는 서정적인 모습은 가족영화의 따뜻함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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