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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미학은 뭉게뭉게, <스팀보이>

충실한 그래픽 성과 보여준 오토모 가쓰히로의 <스팀보이>

플라이셔의 <슈퍼맨> 시리즈 이후 가장 생생한 액션만화였고 미국에 재패니메이션 관객을 만들어낸 오토모 가쓰히로의 1988년 <아키라>의 열성팬이라면 21세기 들어와 가장 기대를 모은 만화영화, 오토모의 제작비 많이 든 <스팀보이>에 만족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오토모는 컬트 고전이 세운 전통을 잘 만들어진 기사도 영화로 가려버리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면서. <아키라>가 도시 환경의 반이상향과 묵시록적인 포스트 <블레이드 러너> 분위기를 살리며 사이버펑크 테크노 신비주의를 일으켰다면 <스팀보이>는 고의적으로 시대가 맞지 않는 배경을 보여준다. 오토모가 윌리엄 깁슨을 <아키라>에 영향을 준 소설가라고 밝혔듯이 <스팀보이>에서도 깁슨이 1991년 브루스 스털링과의 공동작업이었던 스팀펑크, <차분기계>(“The Difference Engine”)를 통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대체역사를 보여줬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스팀펑크: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한 18∼19세기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사이버펑크 식 이야기-역자).

<아키라>의 신도쿄는 소년갱단과 테러리스트들, 각종 도구로 무장한 군인들, 염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사는 고층빌딩과 거대한 스크린이 가득 들어찬 밀림이었다. <스팀보이>가 보여주는 세상 또한 기술 문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산업화된 배경에는 비록 매연이 새로운(‘오래된’이라고 해야 하나?) 네온처럼 사용되지만 프레드릭 제임슨이 명명한 “히스테리적인 기품”(Hysterical Sublime)이 가득하다. 오프닝 장면은 거대한 공장들과 연기로 꽉 찬 산업화된 전경의 19세기 중엽 맨체스터를 성대하게 보여준다.

목가적인 삶을 살던 어린 레이 스팀에게 사악한 첩자들이 쳐들어와 발명가인 할아버지, 로이드가 보낸 신비의 ‘스팀볼’을 탈취하려 한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탱크가 집을 공격하고 기찻길에선 추격이 벌어지고 총격을 가하는 비행선에 의해 결국 레이는 오하라 재단의 앞잡이들에게 런던으로 납치되어 간다. 이 사악한 작전을 대표하는 사람은 미국판 더빙에선 미스 스칼렛으로 알려진 황당하게 도도한 어린 소녀다.

<스팀보이>의 이야기는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어 전쟁을 벌이려는 자본주의자 무리가 로이드라는 노인이 포함된, 좀더 기술이 진보한 경쟁관계의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반자본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이뤄진다. 레이의 아버지 에디는 로이드의 반대편에 있지만 이 유년적인 우주의 주요점은 성인들이 모두 악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보다 더 흥미있는 것은 오토모의 미장센이다. <스팀보이>는 내내 갈색의 단색광 톤을 유지한다. 여기저기 안개처럼 널려 있는 증기는 상세하게 묘사된 배경과 빅토리아 시대의 놀랍게 합성된 런던을 부각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그래픽 성과

어쨌거나 일단 오하라 무리에 의해 국제 무기시장으로 전락되는 만국박람회의 호화로운 장식과 예식이 보여지면서 더이상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런던 경찰들과 광포한 오하라 악당들의 증기병사들간의 다툼 속에 런던은 쑥대밭이 되고 유명한 19세기 대영제국 근대화의 정점인 유리궁은 파괴된다.

박람회가 19세기 실제 가장 잘 기록된 행사였다는 점 말고도 후반 한 시간 내내 보여주는 이 혼란에는 만화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오토모는 템스 강이 얼고 중부 런던이 파괴되는 내내 미스 스칼렛의 참을성 없는 성깔을 거의 같은 무게로 다루는 등 영국식 줄여서 말하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일인 폭격기, 잠수정과 온갖 철컹거리는 기계들 등 온갖 공상의 증기기관 기계들이 가득하다.

<스팀보이>는 지난해 <이노센스>가 보여준 깊은 우울함이나 시각적인 충격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그래픽 성과를 보여주는, 자극적으로 고안된 작품이다(레트로 스타일은 <브라질>이나 데이비드 린치의 <>과 <아이언 자이언트>에 비할 만하다). <스팀보이>는 일본 대중문화의 가장 끈질긴 시나리오에 새 옷을 입히고 있다. 영화가 비록 데이비드 카퍼필드나 리틀 넬(<록키 호러 픽처 쇼>의 배우-역자)의 영역에 거할지 모르지만 <고질라>만한 도시 파괴는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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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담형(2005. 3. 15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