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는 우아한 첼로의 선율과 자동차 사고의 굉음을 함께 들려주며 시작한다. 평온한 중산층의 일상이 붕괴되는 소리가 도입부부터 감지된다. 음대 강사 미주(성현아)의 안온한 일상은 의문의 테이프를 받으면서, 그리고 자폐증을 앓는 큰딸에게 첼로를 사주면서 일그러진다. 학점을 나쁘게 받아 유학을 갈 수 없게 되었노라고 행패를 부리는 수강생, 남편이 들여온 말 못하는 가정부, 그리고 느닷없이 죽는 강아지. 미주는 낮에도 헛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환청에 시달린다. 급기야 함께 사는 손아래 시누이 경란이 결혼을 앞에 두고 목을 매 자살한다. 이 불길함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첼로>는 <링>이나 <주온> <착신아리> 같은 일본식 공포영화부터 중산층 내부의 공포를 다룬 <아카시아>, 경쟁과 질투를 동기로 삼은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등 공포 장르의 온갖 관습을 인용한다. 귀신은 사진 한가운데서 불쑥 등장하고, 차 앞유리는 이유없이 산산조각나고, 침대 밑에서는 누군가 이불을 잡아당기며 문자 메시지에서는 ‘행복하니’라는 협박조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음산하기만 한 가정부는 마치 집안의 흉사를 끌어들이는 마녀처럼 보인다. 큰딸의 첼로는 억울하게 죽은 이의 손을 거치기라도 했다는 듯이 듣기 거북한 소음만을 낸다. 초반에 이런 관습적인 장치들을 슬쩍 맥거핀으로 놓기는 했지만 그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는 못한다. 진짜 무서움은 후반부가 한참 지난 대목, 미주의 그 어둠컴컴한 지하실에 가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 <첼로>는 연쇄살인극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영화의 구조는 그것과는 큰 연관이 없다. <첼로>는 공포영화의 관습을 시추봉으로 삼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처럼 먼지 쌓인 무의식의 지하실 깊숙이 내려간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선율은, 큰딸이 그어대는 신경질이 날 정도의 불협화음과 더불어 이 영화의 복선을 이룬다. 의문의 테이프에서 함께 연주한 태연은 누굴까. 왜 미주는 그 음악에 신경을 곤두세울까.
지루하고 산만한 공포영화의 관습들을 힘겹게 지나면, 그제야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다. 행복하니? 네 죄의식의 지하실로 내려가봐. 영화는 그 죄의식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죄의식으로 비롯한 악몽은 반복될 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