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마을을 떠나려던 보안관 윌 케인은 나쁜 소식을 전해듣는다. 그에게 복수하기로 맹세한 악당들이 정오에 마을로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도망치면 그뿐이다. 그러나 그는 악당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흥미로운 것은 마을사람들의 반응이다. 예전에 그가 악당들을 잡아넣었을 때에는 환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도 그의 편이 되려 하지 않는다. 홀로 맞선다면 승산 없는 싸움이다. 그는 과연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스크린타임과 리얼타임이 일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색적인 서부극 <하이 눈>이 던진 질문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되돌려주는 대답은 예스! 보안관은 악당들을 모두 처치하고 신부의 사랑을 되찾으며 자부심에 가득찬 채로 마을을 떠난다. 윌 케인처럼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선 사내들의 운명은 <하이 눈>의 작가 칼 포먼이 평생토록 탐구한 테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영화의 엔딩에서 그가 예스라는 대답을 되돌려준 것은 아니다. <콰이강의 다리>는 허망하게도 무너져버리고 <맥켄나의 황금>은 전설 속에 파묻혀버린다. 그렇다면 포먼 자신의 삶은? 노에 의한 예스였고 예스에 의한 노였다.
칼 포먼은 시카고의 유태계 러시아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한때 법률공부에 몰두했던 그가 20대 후반에 저명한 제작자 스탠리 크레이머를 만나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 1940년대 초반부터 크레딧을 올리기 시작한 그는 <하이 눈>에 이르기까지의 10여년 동안 크레이머사단을 대표하는 시나리오작가로서 명성을 떨친다. 그의 초기작들은 터프한 남성캐릭터들의 고독한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어서 이후 숱한 아류작들을 낳았다. 그래도 <챔프>(1979)의 존 보이트는 <챔피언>의 커크 더글라스의 버전다운판이고, <7월4일생>(1989)의 톰 크루즈는 <남자들>의 말론 브란도에게 한참 못미친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시라노>(1990)도 호세 페레의 <시라노> 앞에서는 명함을 못내밀고.
<챔피언>과 <남자들>에 이어 그의 시나리오를 세 번째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려놓았던 <하이 눈> 이후로 그러나 포먼은 할리우드의 기피인물이 된다. 매카시즘의 마녀사냥터였던 반미활동위원회를 격렬히 비난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 포먼은 이후로도 물론 계속해서 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자막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마틴 리트가 <프론트>(1976)에서 담담하게 그렸던 그 희비극적 상황을 떠올려보라!). 현실은 영화보다 추악하다. 영화 속의 윌 케인은 마을을 지켰지만 현실 속의 칼 포먼은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쫓겨난 것이다.
그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 <콰이강의 다리>이다. 데이비드 린의 이 걸작 전쟁서사시를 포먼이 썼다는 것은 당시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 그래서 아카데미가 궁여지책으로 짜낸 묘안이 원안자인 피에르 불에게 각본상을 수여하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개가 웃을만한 수작이었다. 피에르 불은 영어를 한마디로 못하는 프랑스인 작가였던 것이다. 울분과 환멸을 떨쳐낼 수 없었던 포먼은 할리우드를 버리고 영국으로 떠난다(보수적인 아카데미는 그의 사후인 1985년에 이르러서야 <콰이강의 다리>에 대한 포먼의 공적을 인정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섰던 사내는 망명지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포먼은 영국에서 ‘오픈 로드’라는 자신의 영화사를 차려 제작자를 겸하면서 영화작업을 계속했다. 유일한 감독작품인 <승리자들>의 유럽 빅히트로 돈방석에 올라앉기도 했다. 할리우드와의 합작인 <나바론>이나 <맥켄나의 황금> 같은 대작들은 전세계를 뒤흔들었고, 스스로 영국작가조합의 의장을 맡아 ‘작가들의 대영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망명지에서의 성공은 향수를 더해줄 뿐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고향인 할리우드를 그리워했다. 말년의 그가 할리우드로 돌아와 쓴 마지막 시나리오의 제목이 가슴을 친다: <시간이 다 됐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