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11살의 사츠키와 4살의 메이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다. 곧 퇴원하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공기가 좋은 시골을 찾아온 것이다. 도시와는 달리 사방이 논과 밭, 그리고 도토리 숲으로 둘러싸인 곳. 사츠키가 학교에 간 뒤, 혼자 뛰어놀던 메이는 뒤뚱거리며 숲으로 도망치는 동물을 발견한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뒤따라가던 메이는 갑자기 나무 밑둥으로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곳은 바로 숲의 요정 토토로의 커다란 배 위. 집으로 돌아온 메이는 토토로와 만났다고 떠들어대지만 사츠키는 믿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날, 사츠키와 메이는 우산을 가지고 아버지 마중을 나간다. 컴컴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츠키와 메이 앞에 다시 나타난 토토로. 그날 이후 사츠키와 메이는 토토로와 함께 즐거운 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어머니의 퇴원이 연기되고, 불안해진 메이는 병원에 가겠다며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 메이를 찾아 헤매던 사츠키는 마지막 시도로 토토로에게 구원을 청한다.
■ Review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는 ‘일본적’인 무엇이 없었다. 상상 속의 공간은 유럽을 닮아 있었고, 하늘을 찌르는 성과 비행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웃집 토토로>는 다르다. 여기는 50년대 일본, 그것도 시골이다. 성이 아니라 검댕 먼지가 나오는 낡은 시골집과 비행선 대신 고양이 버스가 아이와 어른의 동심을 하늘로 훌쩍 띄워준다. 그들의 일상 역시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위해, 나날의 기쁨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상을 가꾸어간다. 아주 작은 이야기, 그러나 모든 이들이 원하던, 지극히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는 가족영화, 애니메이션으로는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절정의 높이에 오른 작품이다. 88년 개봉된 <이웃집 토토로>은 순식간에 일본인을 사로잡았고, 그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는 10여년이 지나서야 <이웃집 토토로>를 보게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감동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는 순수나 동심이라는 말로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모든 이에게 절실한 ‘꿈과 추억’을 되살려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72년 <팬더와 아기 팬더>라는 TV시리즈를 만들었다. 이이들이 좋아하던 캐릭터 ‘팬더’는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로 이어진다. 통통한 몸매와 웃음, 달리기를 좋아하는 점은 팬더에서 가져온 개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기에 부엉이, 너구리, 곰 등 숲 속의 동물들과 북구의 요정 트롤, 일본 전래 도깨비 등의 이미지에서 차용하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토토로를 만들어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5배가 넘는 스케치와 3배의 제작비를 들인 <이웃집 토토로>는 자연의 풍경묘사에서 놀라운 테크닉을 발휘한다. 미야자키가 특히 애착을 가지는 것은 ‘숲’이다. 인간의 모든 것이 숲에서 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미야자키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둘을 매개해주는 요정의 존재를 통해 새삼스러운 자각을 안겨준다. <이웃집 토토로>는 “애니메이션의 속성 중에는 물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로 물체가 변화한다는 것도 있다.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미야자키의 말을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국민감독이다. 누구나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좋아한다. 놀라운 사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일반 관객만이 아니라 이른바 ‘오타쿠’한테도 걸쳐 있다는 점이다. 오타쿠에서 출발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는 “재패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투에 의해 가꾸어졌다. 우리 TV시대가 바로 그 목격자다”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아름답고 화사한 것 같지만, 미야자키의 작품에는, 애니메이션에 통달했다고 자신하는 오타쿠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테크닉들이 숨어 있다. “소리를 없애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히치콕이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다”라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 로버트 와이즈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늘 한계를 돌파하고, 정밀한 테크닉으로 만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사람들이 잠을 자는 사이에 토토로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의 광활한 숲을 고독하게 가꾸어온 것이다. 만인을 위하여.
<이웃집 토토로>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런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눈앞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에는 숲과 산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마음껏 뛰어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즐거움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에게도 맛보게 해준다는 것. 그런 순수한 선의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는 듬뿍 담겨 있다. <이웃집 토토로>는 보고 있으면 웃음과 눈물이 절로 난다. 게다가 그 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튼튼하게 얽어매져 있다. “칸타가 성인용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해도 다리가 닿지 않아 고민한 끝에 해결책으로 몸을 비틀어서 비스듬히 페달을 밟는다. 지금은 잊어버린 그런 장면에 무의식적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미야자키의 세밀한 예술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평처럼 <이웃집 토토로>는 사실적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잊어버렸던 과거, 우리가 지금도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