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영화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내외의 무면허 영화평론가들을 모시고 최근 개봉된 영화를 야매로 찢어발기고 회쳐 먹는 ‘씨네마 지옥’ 시간입니다. 최근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한 다수의 평론가들이 시사회 출입 금지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용기있는 한분이 출연해주셨습니다. 여러분, 박사탕 박사님이십니다.
씨네: 오늘 박사님께서 분석해주실 작품은 <박하사탕>입니다. 지난 부산영화제에서부터 소문을 불러일으키더니, 최근 개봉되어 삼십대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죠. 그런데 박사님께서는 이 작품을 두고, “첫사랑의 실패가 모든 비극을 가져왔다”고 정리하신다는데.
박사: 아,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탕’이죠. 주인공 김영호는 첫사탕 봉지를 잘못 여는 바람에 줄줄이 알사탕으로 인생을 망치게 된 것입니다.
씨네: 사랑이 아니라, 사탕이라구요. 그게 무슨 관계가 있죠.
박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인공의 첫사랑인 윤순임이 왜 하루에 천개씩 사탕을 싸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1979년 당시, 박정희정권이 최후의 수단으로 개발하고 있던 신무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수한 용액이 가미된 박하사탕을 먹게 된 국민들은 세상이 마구 즐거워보이고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찬동하도록 되어 있죠. 그리고 영호가 사탕을 먹고 헤벌쭉해져서는, 마치 이곳에 예전에 와보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사탕이 뇌 속에 용해되면서 일으키는 일시적인 정신착란 상태이지요.
씨네: 윤순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가요.
박사: 처음에는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실을 알고 군대에 있는 영호에게 급히 찾아간 것이죠. 그때 영호는 이미 정신이 상당히 파괴된 상태인데, 사탕을 통해 그의 생체를 지배하던 박정권이 사라지고 나니 그 흐름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된 거죠. 한 예로 군대에서는 말을 할 때 “다, 나, 까”로 끝을 맺어야 하는데, 영호는 시위대를 진압하러 간 엄혹한 상황에도 고참에게 “했어요, 했어요”라고 사제말을 쓰죠. 그리고 이때 밝혀진 또 하나의 사실은 군부가 사탕을 총알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던 것입니다.
씨네: 영호의 반합에서 쏟아져나온 사탕 말씀입니까.
박사: 그렇죠. 탄창에 있어야 할 사탕이 반합 속에 있으니 고참이 화를 안 내게 생겼습니까? 나중에 영호는 광주에서 여학생에게 빨리 지나가라며 하늘에 대고 총을 쏘는데, 여학생은 총탄에 맞아 즉사합니다. 사탕 총알은 스스로 생각을 하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생체 병기지요.
씨네: 영화에서는 영호가 왜 형사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는데.
박사: 아마도 자기 의식을 지배하는 사탕의 실체를 찾기에 적당한 직업이어서겠죠. 그래서 운동권 조직원들을 지독하게 고문했던 것입니다. 지하 운동권 역시 군부정권의 비밀 무기인 사탕을 열심히 추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운동권 중에는 오히려 사탕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사탕은 아름답다’고 일기에 쓴 대학생 같은 경우죠.
씨네: ‘삶은 아름답다’ 아닙니까.
박사: ‘사탕은 아름답다’를 흘려쓴 건데 영호가 잘못 읽은 거죠. 또 봅시다. 모든 것을 포기한 영호가 사탕 권총을 구해 자살하려고 할 때 순임이 남긴 카메라를 받죠. 그때 영호는 형사 시절 순임이 찾아온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순임은 그때 이미 사탕 공장의 비밀을 그 카메라에 담아 두었던 거죠.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어졌지만.
씨네: 끝으로 요즘 삼십대들에게 이 영화가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사: 젊은 날의 상처가 자신의 현재를 모두 합리화해줄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이겠죠. 지금 내 인생이 구질구질해도 내 탓은 아니다, 라면서 사탕 봉지에 싸버리는 거죠.
등장 인물
박사탕: 사탕학 박사, 세상의 모든 것은 사탕이 지배하고 있다는 괴이론을 펼치고 있다.
김영호: <박하사탕>의 주인공 남자. 젊은 시절 사탕에 의식을 빼앗겨버린 뒤 그 비밀을 찾아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