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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재발견 [3]

-변신에 대해 다 동의하는 분위기인데 혹자에 따라서는 더 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정색하고 욕을 한다든지 동성애 느낌이 드는 면을 더 줄 수도 있고, 하여 본인이 더 욕심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감독님하고 조율한 부분인데 감독님이 표현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함에서 오는 섬세한 뉘앙스랄까 이런 게 있는데. 물론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 테고. 오히려 이영애의 연기력 여하에 따라 달라졌다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저도 더 갔으면 좋겠는데 감독님은 줄여서 가고 오히려 낯선 게 더 재미있지 않겠느냐 하세요. 감독님이 한번 더 한번 더라는 닉네임을 저한테 주신 이유도 그래요. 저는 캐릭터에 대한 기준을 모르겠는 거예요. 이게 좋은 건지, 저게 좋은 건지. 그래서 감독님은 확신을 하고 오케이를 주셨는데 내 선에서는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에 대한 모호함이 현장에서 많이 있었죠. 그래서 전 계속 테이크를 많이 가고 싶어했고 감독님 선에서는 왜 자기를 못 믿느냐는 정도의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도 하시고, 그 부분에서는 감독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가령 히피 부모를 만났을 때 대마초를 피운다든가, 더 세게 갈 수도 있지 않았나요.

=그때 피웠어요. 금자의 동선 때문에 묻혀서 안 보여요. 거기서 금자의 또 다른 면을 살리다 보니까 묻히더라고요.

-섹스신 같은 경우 필요없어서 뺐다고 감독님이 그랬는데 진실은 뭔가요.

=감독님 말씀이 맞아요. 현장까지는 콘티가 있었어요. 근식이 뒷모습에서 금자가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것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지우셨더라고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감독님 의견이 더 중요하니까. 막상 찍고 보니까 수긍할 수 있고 더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타임이 점프업되어서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편집된 것 중에 더 센 장면이 있다는 얘긴가요.

=오히려 그런 게 더 테이크 많이 갔어요. 정말 중요한 감정이나 어려운 건 오히려 쉽게, 감정이 잘 전달돼서 짧게 갔는데. 너나 잘하세요, 이런 대사, 욕하는 거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강약조절을 많이 갔어요. 왜냐하면 어휘 처리나 강약에 따라 많이 달라지잖아요. 저는 더 세게, 길게 가자는 부분도 있었고. 나중엔 스탭들이 금자가 점점 더 무서워진다고, 그리고 저만 보면 평범한 연기를 해도 웃으시는 거예요. 점점 금자랑 닮아간다고, 점점 행동이 엉뚱해진다고. 아이섀도 그렇게 하는 것도 낯설다고 했는데 나중엔 내가 약하지 않냐고 더 하자고 그런 경우도 있었죠.

-배우로서의 아쉬움은 없나요, 결국 감독의 의지대로 테이크가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일례를 들어서 이번 영화는 저랑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잖아요. 시나리오 만들기 전부터. 충분히 나름대로 시간이 있었고 초고 7고, 8고 나올 때까지 완벽하게 했고 리허설 하면서 또 많이 바뀌었고 제 생각도 많이 반영되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마지막에 금자가 나루세 케이크점에서 다른 사람들 다 나가고 근식이가 들어오는 장면인데 감독님은 금자를 어떻게 할까 했는데, 제가 금자는 왠지 모르게 앉았을 때 느낌은 현실의 여자가 아니란 생각을 했어요. 몸은 여기 현실에 있지만 생각이나 마음은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금자는 움직이지 말고 미동도 없이 뒷모습만 보는 게 어떨까 했는데 그게 반영이 됐고요. 초반에 담배 물어 젖히면서 웃는 거, 그렇게 현장에서 바로 느낌이 좋아서 반영되었던 거 많아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공중전화로 백 선생에게 어디 갈 데가 없다고 전화하는 장면이었는데, 왼발 등으로 오른 종아리를 긁는 모습이요. 금자의 어린 날이 저거구나, 한 장면으로 보여준달까. 그러나 금자의 감옥 시절은 알기 어려워요. 딸은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옥생활이 너무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 나오고.

-그러게 말이에요. 맞아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웃음) 내가 감독이라면 그러겠는데. 종아리 부분은 현장에서 그렇게 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역할이 어렵고 그러니까 한양대 최형인 교수의 도움을 사전에 받았어요. 미리 테이프로 녹화해서 집에 가서 보기도 하고 도움이 된 것도 있지만, 현장에서 전체적으로 셋업이 돼서 다시 리허설했을 때 느낌이 더 좋은 것도 있더라고요. 집에서 치밀하게 해와서 잘되는 것도 있고 현장에서 디테일한 리액션을 해서 더 잘되는 것도 있더라고요.

<봄날은 간다>

TV <대장금>

-공백이 긴 배우에게 물어보면 좋은 시나리오가 없어서라고 해요. 정말 공백을 가진 이유는 뭐죠. 너무 신중한 건가요.

=<봄날은 간다> 이후에 잠깐 쉬려는 게 금방 2년이 훌쩍 지나가서, 제가 데뷔한 이후 그렇게 쉬어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거지요. 막상 하려니까 돌이켜보면 시나리오와 배우의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대장금>이 들어온다고 해서 <대장금>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스캔들이 그렇게 없는 까닭은 뭘까요. 기억에 없는데.

=아시잖아요. 기억에 없으시면 없는 거예요. 없을 만하니까 없죠. 사실이면 다 나왔겠죠.

-사람들이 아예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걸까요.

=아, 얘는 아예 뭐 그런 거 없을 거다? (웃음)

-술이 세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근데 그거는 제가 보여지는 겉모습 보고, 이영애는 술을 전혀 못하게 생겼는데 어디 가서 뭐 한잔했다 그러면 되게 크게 와닿으시는 것 같아요. 술을 잘하지는 못해요. 전혀 못하는 건 아니고 분위기 맞춰서 먹는 정도, 실수 안 하는 정도예요. 이영애는 밥을 먹으면, 아니 그렇게 밥을 많이 드세요? 그래요. 그러니까 저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고정관념이 있으신 거 같아요. 보통인 것도 기대치 이상으로 표현을 해주셔서 과장되는 게 아닌가 해요. 저는 술을 즐기지는 않아요.

-연기 스트레스는 뭘로 푸세요.

=<대장금> 할 때는 힘들어서 차 안에서 운 적은 있어요. 이번 영화 하면서 지방을 많이 다니잖아요, 어느 때보다도 더. 그런데 저는 지금은 조금 변했다 하면 변한 건데 지방 가면 산에 가고 혼자 생각하는 걸로 자기를 돌아보는 걸로 풀어요. 영동에 갔을 때 속리산 가서 풍경소리 듣거나 바람소리 듣거나 하는 게 저한텐 좋았어요. 명상이라면 명상이고 그렇게 푸는 게.

-중·고등학교 때 연기자가 되겠단 생각을 했나요.

=막연한 환상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들긴 했지만 활동은 전혀 못했고.

-배우로서는 드물게 독문과를 나왔어요.

=일단은 점수에 맞추려고 했고(웃음), 독문과나 불문과를 가야 했는데 독일어 발음이 더 멋있게 들렸어요. 독문과 친구들이 조금 이성적인 것 같아요. 논리적이고. 독문과라고 해도 열심히 하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는데 철학적인, 사색적인 면이 강한 것 같아요. 괴테라 릴케 같이 사색적인 면이 저한테 더 맞는 거 같아요.

-리뷰 나오는 거 꼼꼼히 챙겨보나요.

=작품에 대한 애착이나 그런 건 똑같은데 아무래도 이번엔 워낙 다양하고 더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혹평이 나오면 속이 상하더라고요. 옛날 같으면 한귀로 들으면 한귀로 흘리고 그런가보다 할 텐데 이번엔 그런 감정 조절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눈에 띄는 리뷰가 있나요.

=박 감독님 영화를 난해하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보셔서 그런데, 뭔가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을 거다, 또는 이영애는 연기를 못할 거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보시는 것 같아요. 감독님도 불만이 있고 이영애란 배우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데 선입견을 갖고 보시니까 사람마다 평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그런 불만이 없지 않아 있어요.

박찬욱 감독의 ‘결사적인’ 이영애 지지론

“내가 열 가지를 얘기하면 영애는 스무 가지를 생각해왔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의 변신이 성공적이긴 하지만 그건 배우의 고유한 힘 때문이라기보다 그 배우의 고유함과 변신 욕구를 잘 배치한 감독의 힘 때문이 아닐까.

=동의할 수 없다. 각본에 묘사된 것도 있고 해서 내 의도가 많이 들어 있다고는 해도, 세상에 안 그런 영화가 어딨어. 어느 명배우든지 다 그런 거고 그 안에서도 영애양의 의지나 상상력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이 많다.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녀의 역할에 대해 더 인정해줘야 한다.

-이영애의 반대로 수정되거나 포기된 장면 혹은 그 정반대의 것이 있나.

=못하겠다고 한 건 전혀 없었다. 정사장면이 더 있는데 빠진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 스토리보드에 있는 한컷을 내가 알아서 그냥 뺀 거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저 못해요’ 한 게 없다. 적극적으로 한 건, 예컨대 호주 양부모하고 취해서 춤추고 노는 건 내가 시킨 게 아니다. 내가 열 가지를 얘기하면 스무 가지 생각해와서 자기 생각 밝히고 의견을 조율했는데 그 강도는 송강호나 최민식보다 더했다.

-스타의 자의식이 있을 텐데 다른 스타와 다른 게 있다면.

=대중이 생각하는 자기에 대한 인상이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거 정도? ‘이건 감추고 싶어요’ 그런 거 없다. 다 선입견이라고 본다.

-선입견에서 왜 벗어나려고 하는지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그냥 알 것 같아서 굳이 묻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 않나.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이미지에 대한 가능성을 혹시 그의 이전 출연작에서 발견한 게 있나.

=특별한 작품은 없다. 다만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영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답답해하는 것 같다(의구성 질문을 자꾸 던지자 박찬욱 감독의 말투가 약간 격앙됐다. 그에게서 보기 드문 일이다).

=선입견에 많이 둘러싸인 사람이라 그것이 많이 방해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나에게 뭐 시켰을 때 안 하겠느냐고 하는 게 없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왜들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겠으나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 스스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거였고, 나는 지금의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한 거지 여기서 더 폭력적이고 더 그로테스크하게 더한 강도로 그의 이미지를 해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정도가 맞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탐닉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배우 이영애를 아주 높이 평가하는 건가, 송강호나 최민식처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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