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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인간의 사랑, <바이센테니얼 맨>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단 한가지 이유에서다.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 이 정도 코미디 연기는 그의 이력에는 차고도 넘친다.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 <나홀로 집에>나 <스텝 맘>을 만드는 재주와 시나리오 작가의 역량은 살만하지만 끌리는 감독은 아니다. 원작자는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이라는 좀 딱딱하게 들리는 원칙을 세운 인물이다. 또한 자신이 세운 이 법칙을 바탕으로 ‘로봇’에 관한 소설들과 과학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SF소설가 정도로 알려진 아이작 아시모프는 1976년에 <바이센테니얼 맨>이라는 중편 하나를 썼다. 지면상 옮길 수는 없지만 아시모프는 마치 화두처럼 소설의 서두에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을 써놓았다. 원작은 이후 이 법칙을 바탕으로 사건을 전개시켜 간다. 앤드류는 이 법칙의 지배를 벗어나 법정 투쟁을 불사하며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윤색과정에서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이라는 딱딱한 말 대신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로맨스로 채워놓았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면서까지 펼쳐진 로맨스의 핵심은, 작은 아씨가 죽자 꼭 닮은 손녀와 앤드류가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설정이었다. 덕분에 이 지적인 소설은 영화 후반부에서는 낭만적인 통속소설로 변모해버렸다. 원작에서는 앤드류가 죽기 전 ‘작은 아씨’의 이름을 속삭인다. 이를 통해 그가 인간이 되려고 했던 욕망의 기저에는 숨겨온 사랑이 있었음을,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의 법정 투쟁 전체가 사랑의 투쟁이었음을 극적으로 전해준다. 그러나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행복한 로맨스가 성취의 목표처럼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이땅에서 <바이센테니얼 맨>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선전문구처럼 이 영화가 휴머니티를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영화의 절반이 할리우드식 이데올로기에 의해 윤색됐다 하더라도, 로봇을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아시모프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완고한 이 사회에대해 문제제기를 해오는 바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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