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우드의 B급 SF 영화에 대한 기억에서 <에드 우드>와 <화성침공>을 끄집어낸 팀 버튼이 이번에 들고나온 발명품은 해머 공포 영화의 이미지로 채색한 <슬리피 할로우>다. 50∼60년대 영국 영화사 해머 프로덕션은 드라큐라, 프랑켄슈타인, 미이라 등 30년대 미국 유니버설 공포 영화 캐릭터들을 소생시켜 인기를 누렸다. 팀 버튼은 그 시절 해머 영화의 특징인 기괴하면서도 로맨틱한 이미지를 머리없는 귀신 호스맨의 전설에서 찾아 환상적 세트 위에 펼쳐놓는다.
괴담을 구성하는 요소는 단순하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주인공이 있고, 댕강댕강 목을 치는 무서운 귀신 호스맨이 등장하며, 주인공을 매혹시키는 신비의 여인이 끼어든다. 하지만 정색을 하고 덤비는 해머 공포 영화와 달리 팀 버튼은 어깨에 힘을 빼고 조니 뎁을 코믹하게 만든다. 애당초 명탐정이 되기엔 겁이 너무 많은 주인공 크레인은 놀란 토끼눈을 한 채 꺼벙한 표정을 지으며 요란스런 모양에 비해 별 쓸모없는 발명품을 들고 설친다. 이런 어설픈 탐정이 호스맨처럼 무시무시한 악령을 이길 수 있을까? 현실에선 불가능하겠지만 팀 버튼의 세계에선 이뤄진다. 마차를 타고 슬리피 할로우로 들어서는, 네덜란드 풍경화 같은 도입부가 보여주듯, 슬리피 할로우는 판타지로 축조된 곳이기 때문. 이곳에서 과학은 주술을 이기지 못한다. 마녀로 몰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성에 의존하는 크레인의 추리는 헛다리를 짚는다. 결국 악령을 물리치는 건 과학이나 용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게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어머니의 지혜와, 가슴에 간직하라고 전해준 연인 카트리나의 마술책. 1799년이든 1999년이든 세상을 구하는 건 이런 진실된 마음인 것이다.
미국 개봉 당시 <슬리피 할로우>는 잔혹묘사 때문에 논란이 됐다. 몸통에서 갓 떨어진 사람머리가 허공을 가르는 장면에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그러나 안개와 달빛이 배어든, 흑백에 가까운 뚜렷한 콘트라스트의 화면은 마치 최면을 거는 것처럼 보는 이를 빨아들인다. 잔혹함과 순수함이 어우러진 팀 버튼의 마을 슬리피 할로우는 현실보다 어둡고 위험하지만,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녀의 입맞춤에 홀려 마음을 뺏기는 마법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