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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5] - 데릭 엘리 비평

잔치는 만족스럽게 끝났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무엇보다도 항상 강렬한 영상 경험을 제공해왔는데, 그런 면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시각적으로 자극적이고 감정적으로 유쾌하면서 맹렬히 지성적인 작가영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극적 구성의 몇몇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장르에 기초한 동아시아와 국제영화의 한계를 뛰어넘고 발전시킨 삼부작의 독창적이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론이 되어줬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및 영화광적인 요소를 뒤섞었다는 점에서 박 감독의 복수 삼부작에 가장 유사한 서양영화를 꼽는다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2부작 <킬 빌>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상 그 이상의 유사점을 찾긴 힘들다. <킬 빌>이 내러티브에 기초한데 반해 박 감독의 삼부작은 주제에 기초하고, 타란티노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아시아와 서양 펄프 시네마의 공통요소를 화합시키려고 한데 반해 박 감독의 세 영화는 공통적으로 100% 한국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지녔다.

아시아영화와 특히 한국영화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박 감독의 복수 삼부작에서 가장 신선하게 느껴지는 요소는 등장인물들이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미국의 관람객은 (유럽 관람객의 경우 좀 덜하지만) 선과 악 사이의 분명한 투쟁,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영웅에 대한 최후의 구원, 악인의 끔찍한 행동에 대한 타당한 설명(어렸을 때의 학대, 기타 등)을 예상하게 마련이다. 박 감독의 삼부작에는 영웅은 없고 단지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가지각색의 ‘악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특히 <친절한 금자씨>에서 최민식이 연기하는 인물은 뉘우침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보이고 그의 행동에 대한 어떤 심리학적인 설명도 나오지 않는다. 박 감독과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정서경은 사실상 이런 발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면서 최민식이란 인물의 행동에 대해선 요트를 사고 싶어한다는 것이나 ‘좋은 유괴’와 ‘나쁜 유괴’ 사이를 구별한다는 것 등 도덕관념을 벗어난 이유를 제공할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심리학적 토대가 깔려 있는 전통적 서양의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일본 만화와 같은 영화이다. 최민식은 단지 스크린상의 영기(靈氣)와 연기 노하우만으로 그의 인물을 비록 그로테스크할지라도 인간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하며, 비슷한 식으로 영화의 끝부분에서 멋지게 그려진 희생자의 부모와 친척들도 인간화된다. 연기 면에서 가장 약세는 이영애의 연기다. 항상 존중할 만하며 (천사 같다가 앙심을 품은 모습으로 탈바꿈할 때와 같이) 핵심을 찌르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이 더 많은 연기자였더라면 금자씨 캐릭터에 별도의 20% 깊이를 더해줘서 괜찮은 연기를 인상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부족한 20%가 가장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시나리오 구성상 갑자기 부모들의 복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금자씨라는 캐릭터가 본질적으로는 제쳐지는 영화의 끝부분에서다. 어쩌면 스크린 연기가 더 뛰어난 연기자라면 이 부분에서도 계속 금자씨에게 동등한 초점을 맞추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영애도, 부모가 사라진 뒤의 영화 마지막 10분도, 영화를 다시 핵심이 되는 극적 줄기 안으로 끌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영애와 영화 전반이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은, 근본적으로 남성적인 형태의 복수가 중점이 된 삼부작에 신선한 여성적인 관점을 가져온 것이다. 이 점에서 시나리오는 금자씨가 (옥중생활 플래시백 부분의) ‘천사 같은’ 페르소나와 (감옥 밖에서의) 빨간 아이섀도를 바른 음모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그린 전반부까지가 특히 뛰어나다. 박 감독이 단지 또 하나의 홍콩/대만식(아니면 <킬 빌>식)의 사내다운 여성의 복수영화를 만들지 않도록 신경 쓴 흔적이 보이고, 특히 단순한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복수가 아닌 ‘속죄’라는 금자의 여성적 필요를 강조한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이에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시나리오의 구성이 약간 흔들리는 것은, 부모와 친척의 이야기로 갑작스럽게 전환을 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독창적인 형태의 복수가 보이지 않는 후반부에서다. 일찍이 영화는 금자가 감옥에서 13년 반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인내한 것에 견줄 만한 정교한 형태의 복수를 기대하게 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녀는 더 깊이있는 정신적인 복수보다는- 부모와 친지들이 가담을 하든 말든- 그저 섬뜩한 신체적인 복수극을 벌이길 원한다. 그러나 그의 다른 영화 모두에서와 마찬가지로 박 감독은 시나리오 구성상의 약점을 절대적으로 뛰어난 영상기술로 위장하는 데 숙련돼 있다. 영화의 와이드 스크린 이미지는 주된 관심의 초점을 뛰어넘는 시각적 디테일로 넘쳐나고, (음악으로 고조되는) 시나리오의 엉큼한 유머와 아는 사람들만이 아는 장치들(카메오 배우 등)은 관객에게 무엇보다도 이것은 영화, 순수한 영화다라는 것을 항상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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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박재현 (런던에 거주하는 데릭 엘리는 헐리우드 업계지 <버라이어티>의 수석국제 영화평론가이며 <씨네21> ‘외신기자클럽’ 칼럼의 정기 기고자이기도 하다. 그의 공식 <버라이어티> 평론은 일주일 뒤에 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