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소년과 마조히스트 소녀의 기이한 애정행각을 그린 <M과 N의 초상>은 다치바나 히구치의 엽기 순정의 세계에 속한 걸작이었다. 코피를 흘리면서도 황홀경에 젖어 “때려줘, 더 때려줘!”라며 애원하는 여학생과 자신의 모습을 거울이나 유리창을 통해 한순간이라도 봐버리면 갑자기 주변이 샤방샤방 빛의 제국으로 변하며 쓰러지는 미소년의 어처구니없는 로맨스를 보고 있자면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퍼니퍼니 학원 앨리스>의 시작은 그보다 가볍고 경쾌하다. 아이들은 이제 막 취학연령을 넘겨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어리며, 주인공 미캉은 ‘정상’이며 착한 마음씨의 소녀다. 단짝 호타루를 따라 특수학교 앨리스 학원에 입학한 미캉은 그 학교가 요구하는 것이 ‘앨리스’라고 부르는 기이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치바나 히구치의 가느다란 펜터치로 그려진 각기 특이한 앨리스를 가진 아이들 사이에서 미캉은 자신이 ‘무효화 앨리스’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른 이들의 앨리스 작용을 무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갓 입학한 해리 포터처럼 처음엔 즐거운 일투성이지만, 앨리스를 훔치는 도둑과 학교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들을 겪으며 아이들은 학원과 앨리스의 어두운 면에 눈을 뜨게 된다.
<퍼니퍼니 학원 앨리스>에는 각종 앨리스가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한다. 맨손에서 불길을 일으키는 앨리스, 공중부양 앨리스, 전기감전 앨리스,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앨리스 등 종류는 셀 수도 없다. 최고의 장면은 앨리스 학원 문화제가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학급별로 특징적인 앨리스를 이용해서 축제를 기획하는데, 서로의 앨리스를 보완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다양한 상상력은 보는 사람을 ‘이런 학교가 정말 있다면’ 하는 공상에 빠지게 만든다.
이제 10살, 미캉은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해 있는지도 잘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실수 연발이다. “우리 다 함께 친하고 즐겁게 지내보자”는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미캉은 위험도 무릅쓰고 학원생 유괴사건 해결에 앞장선다. 안온하고 화사한, 신기한 앨리스의 별천지 같은 학원 안에도 어둠은 존재하지만, 어쩐지 미캉은 나이를 먹지도, 학교를 떠나지도 않을 것만 같다. 이상한 학원의 미캉이 하얀 토끼를 쫓아 지치지 않는 모험을 계속했으면 하는 어른의 소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