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서가 나왔지만 절판됐다가 10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우리 도서 시장의 일본 소설 붐을 출판사쪽이 감안했기 때문일까?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기 위해 헌책방을 뒤졌다고 하니, 재출간이 반갑다. 제목만 보면 일본 야구 해설서 같지만 야구가 사라진 미래 세계에 살고 있는 야구광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물음표를 넣은 까닭은 이 작품을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줄거리랄 것도 별로 없고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단편들이 죽 이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놓고 포스트모던 어쩌고저쩌고 한다지만, 그런 얘기는 평론가들에게 맡기고 일단 한번 읽어보시라!
야구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900편의 야구 시 쓰기와 100편의 포르노 비디오 보기에 도전하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있다. 야구에 관한 글만 모으는 노인은 카프카의 글이 야구에 관한 글이라고 간주하고, 카프카가 야구에 대단한 열정을 지닌 후보 포수 정도였으리라 추정한다. 철학자 라이프니츠에 푹 빠진 나머지 슬럼프에 빠진 주전 투수도 있고, 공이 너무 잘 보여서 공을 칠 수가 없다는 4번 타자도 있으며, 좌우 타석을 넘나드는 스위치 히터가 된 뒤 세계관이 바뀐 선수도 있다.
4장 일본 야구를 창조한 네케레케세맛타 신에 관한 ‘일본 야구 창세 기담’이 압권으로 다가오는데, 맥도널드 빅맥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신, 볼리비아의 화폐를 관장하는 신, 화장실 수건을 관리하는 신 등 정령(精靈) 신앙이 유달리 발달한 일본 종교 전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구실을 하는 신에 의해 일본 야구가 창조되었다(기원(起源)의 신화에 대한 조롱으로 읽을 수도 있을 듯).
10년 전 첫 출간 직후 이 책이 일부 대형 서점의 스포츠 코너에 진열되어 있기도 했는데,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레저·낚시 코너에 배치한 경우와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 서점사의 엽기적(?) 전설이 아닐 수 없다. 설마 이번에 다시 나온 책마저 그런 전설의 주인공이 되지는…. 여하튼,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뭐 이런 것도 소설인가? 별놈의 작가 다 보겠군’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이야말로 이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일종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