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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애들은 어른의 아버지야,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너무 젊은 예술가’에 대한 훌륭한 초상화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계속 푹 빠져 있고 싶다면 맘대로 하라. 하지만 젊은(너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이번 시즌 영화 중에서 가장 재치있고,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잘 씌어진 작품은 단연 웨스 앤더슨의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국내 비디오 출시명, 원제는 러시모어(Rushmore)-편집자)다. 지난해 뉴욕영화제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허?”라는 소프라노 단말마로 수놓인 이 영화는, 유난히 건조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로맨스물이다.

1996년, 텍사스출신 공동집필자 오웬 윌슨과 함께 기상천외한 게으름뱅이 3총사에 대한 판타지물 <Bottle Rocket>을 만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앤더슨은, 장르 문법 곤죽만들기와 강박적인 인물 그리기가 취미인 게 확실하다. 장르를 규정하기가 전작보다 더 어려운 헛소동이야기 <…사랑에 빠지다>는 질풍노도 같은 열다섯살 음모자 맥스 피셔(제이슨 슈워츠먼)라는 캐릭터를 노래하는데, 아마 관객 상당수는 이 얄미운 녀석에게 주먹 세례를 퍼붓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자기 꾀에 넘어간 오이디푸스

(재니스 메이즈린의 표현을 빌리면) ‘끔찍한 꼬마 맥스’는 러시모어 아카데미의 장학생이다. 왕성한 공상과 몽상의 엇박자 속에 살아가는 맥스는 귀족적 우등생도 구제 불능의 낙오생도 아니다. 실제로 창백한 얼굴에 알파벳이 박힌 윗도리, 빨간 베레모를 쓴 이 깔끔하고 어이없이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안경잡이의 성격을 규정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얼간이’나 ‘멍텅구리’라는 단어는 맥스의 조숙한 자만심을 묘사하기엔 전혀 적절치 않다. 어른이 되고자 하는 그의 욕심이 너무도 개성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레이건시대의 시트콤 <Family Ties>에서 마이클 J.폭스가 연기했던 인물의 패러디라고 해도 좋을 뻔했다. 성질급한 러시모어 교장의 푸념대로, 만약 맥스가 “학교 사상 최악의 학생 중 하나”라면, 그건 그가 교과과정을 단 하나도 통과할 수 없을 만큼 다른 과외활동으로 너무나 바쁜 탓일 거다(꿀벌치기, 레슬링팀 후보선수하기, 라틴어 배우기, 연극 연출하기 등등).

자신 또한 거창한 아이비 리그행 꿈에 사로잡힌 ‘형편없는 무인지경’의 학생이었다고 털어놓은 앤더슨이 모교에서 촬영한 이 두 번째 영화는, 맥스의 2학년 시절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왠지 불길하게도, 주인공이 ‘최후통첩성’ 징계를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맥스는 얼마 뒤 의기소침한 백만장자 허먼 블룸(빌 머레이)과 가까워진다. 이 부자의 근육질 쌍둥이 아들은 ‘둘이 합해서 IQ 두 자릿’ 수준이다. 그러다가 맥스는 그만 아리따운 1학년 교사 로즈마리 크로스(올리비아 윌리엄스)를 보고 상사병에 빠진다. 허먼을 꾀어 로즈마리를 위한 학교 수족관을 짓게 하는 건 맥스의 음모적 상상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

맥스가 교내 야구장의 땅을 파는 행동을 포함한 엉뚱한 기행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기 이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본궤도로 순항해간다. 비수 같은 심리적 고통을 365일 안고 사는 허먼은 맥스의 연막에 어리둥절해진 나머지 로즈마리에게 구애를 시작하는데, 맥스는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곤 완전히 돌아버린다. 이 믿기지 않은 삼각관계가 자기 스스로가 총지휘한 오이디푸스적 판타지인데도 말이다(물론 맥스는 몰랐지만).

독특한 감수성, 풋풋한 휴머니즘

무엇이 맥스의 등을 떠밀어대는가? 이 영화가 그렇듯이, 맥스도 온갖 책략으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사랑에 빠지다>는 사춘기 ‘천재’를 통해 고교 시절의 기괴한 횡설수설을 다룬 <Lord Love a Duck>와 <Ferris Bueller’s Day Off>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맥스는 알고 보면, 윌리엄 셰익스피어 못지 않게, 대중적 신화와 연극적 볼거리에 취미를 가진 일종의 연극적 신동이다. 그의 희곡은 <대통령의 사람들>이나 <형사 써피코> <지옥의 묵시록>(제이슨 슈워츠먼의 진짜 삼촌이 감독한) 같은 70년대 영화의 엉뚱하고 망측한 재가공품들이고.

자신이 인디아나 존스로 분하는 슈퍼8mm 영화를 만들고 희곡을 쓰면서 성장한, 얼추 맥스만큼이나 조숙한 앤더슨은, 잔잔한 코미디의 달인이다. 그뒤 잇따라 벌어지는 일련의 배신과 복수는, 주로 무표정하게, 주도면밀하게 프레임된 ‘동작 개그’, 그리고 아동도서에서 튀어나오는 입체그림과 같은 효과를 지닌, 화면을 꽉 채우는 효과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펼쳐진다. 귓전에 울리는 즉흥적인 음악들이 ‘레스토레이션 코미디’를 암시한다면, 삽입곡들은 거의 모두가 60년대 말의 영국 팝이다(60년대 영국 록밴드 차드와 제레미뿐만 아니라 존 레넌의 <Oh Yoko>까지). 그 감수성은 결코 어디서 빌려온 게 아니다. 다정한 음악과 매력적인 연기들은 젊은 시절 조너선 드미의 따뜻하고 풋풋한 휴머니즘을 떠올리게 하지만 말이다.

빌 머레이는 물흐르는 듯 실수없는 뛰어난 연기로 널리 칭송받아왔다 치고, 평소에 좀 ‘오버’하는 경향이 있는 세이무어 캐슬도 맥스의 아버지 역으로 뜻밖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맥스의 부친은 이발사지만,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뇌수술 전문의로 기회있을 때마다 업그레이드한다). 젊은 배우 3총사의 연기 또한 생생하다. 맥스의 여자 상대역으로 등장한 사라 타나카, 째지는 목소리의 ‘성가대 파트너’ 메이슨 갬블, 그리고 스코틀랜드 출신 천적 스티븐 매콜이 그들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다>는 무엇보다도 고집세고, 밉살스럽고, 잘난 척하고, 연극적이고, 영리하고, 아랫도리가 달아오른, 끈질긴 맥스를 묘사한 제이슨 슈워츠먼의 연기에 힘입은 바 크다.

쾌활한 스타일리스트 영화 <…사랑에 빠지다>는 짐짓 청소년 영화를 가장한다. 문제의 꼬마가 이 영화를 만들 정도로 성장했다면,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맥스의 교육에 관한 이 영화는 상실과 집착에 관한 매력적인 이야기이며, 원제(Rushmore)가 암시하는 대로, 일종의 기념비적 기록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격언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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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뉴욕의 문화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 칼럼을 독점전재합니다. 이 글은 1999년 2월 16일치 평론입니다.